(갈 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갈라디아에 교회가 붙들고 믿는 복음을 흔들고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항상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 한다. 그래서 자신이 훼방자이면서 반대로 조력자이며 협력자처럼 보이려 한다. 교회가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을 하고 신임을 얻을 때까지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유혹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것을 제시하지 않는다. 조금씩 다른 것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우리가 믿는 복음과 동일한 복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씩 더해간다. 그런데 구원을 받은 사람은 율법도 지켜야 한다. 아무 음식이나 먹으면 안 된다. 할례도 행해야 한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표식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은 오직 은혜로 주어진다. 은혜가 있어서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의 고백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값없이 받는 것이다. 선물로 얻는다. 우리의 행위가 추가되는 것이 아니다. 할례를 행해야 한다는 것은 복음을 변질시키는 행위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과 함께 간 이방인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
가만히 들어와 살피는 사람들은 참 복음을 가진 사람들의 자유를 보고 그 자유를 시기한다. 그래서 그렇게 살면 구원 못 받는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구원의 진리가 아닌 종교적 신념이나 문화를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지면 신념과 문화는 변화된다. 하지만 진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오직 은혜로 받은 구원이다.
신자에게 믿음의 행위는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이다. 감사이다. 놀라운 은혜를 덧입고 보니 마음에 새로운 갈망이 생기고, 그 갈망이 삶을 바꾼다. 영적 미각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을 행하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거듭난 후에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결과들이다. 결코 이것이 있어야 하기에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내가 어떤 관계인지에 먼저 집중한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있는지 나를 점검한다. 하나님과 교제를 통해 입맛이 달라지고 생각하는 것이 달라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소망한다. 하나님이 매일 매 순간마다 베풀어주시는 은혜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