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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시험은 우리 욕심과 연관이 있다. 욕심이 없으면 의욕이 없는 사람처럼 무기력해진다. 일정부분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욕심이 필요하다. 욕심은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 문제는 그 욕심이 지나친 것이다.

악한 욕심은 종종 ‘정욕’으로 표현된다. 이런 내적인 욕망이 우리를 넘어지게 만든다. 야고보는 ‘끌려간다’라는 표현을 한다. 정욕은 우리를 사로잡은 포로처럼 끌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악한 욕심과 건강한 욕망을 구별해야 한다. 먹고 싶은 욕망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탐식은 죄이다.

건강한 욕망을 부정하는 금욕주의는 참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다. 건강한 욕망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이다. 욕망을 잘 사용하면 인생의 목적을 성취하고 자아 성숙에 이바지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죄악에 빠지게 된다.

우리 욕망을 ‘하나님의 뜻 밖에서’ 만족시키려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욕망은 기계를 움직이는 수증기(steam)와 같다. 스팀은 동력의 원이다. 스팀이 없으면 기계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스팀은 스팀 자체가 조절하지 못한다. 스팀은 누구에 의해 조절되어야 한다. 욕망은 자체적으로 조절되지 않고 풀어지면 우리를 파멸로 이끌어 간다. 절제되어 잘 사용될 때 기계를 움직이는 힘이 되듯 욕망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욕망이 시험의 내적인 원인이라면 외적 원인은 기만, 속임이다. 야고보는 욕망이 악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그 욕망이 우리를 미혹한다. ‘미혹되다’라는 단어는 ‘미끼로 굄을 당하거나 기만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갈고리나 낚시 바늘로 거는 그런 모습을 연상케 한다. 낚싯밥이 맛있어 보이므로 물고기가 삼킨다면 낚싯밥 안에 낚시 바늘에 낚이는 것이다.

미끼는 아름다운 것일수록 좋다고 한다. 사탄도 아름다운 것을 우리에게 던진다.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고 우리에게 나타난다. 사탄의 전략에 휘말리면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가 죽음의 열매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해 보인다. 지혜롭고 멋지게 만들어 줄 열매로 보인다. 그래서 야고보는 우리가 시험을 당하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고 말한다.

우리 주님은 시험이 다가올 때 말씀으로 이기셨다. ‘기록된바’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사탄이 우리를 속이고 미혹할 때 하나님 말씀으로 이겨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이다. 오늘도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말씀이 마음 중심에서, 입에서 떠나지 않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