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2: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출 2: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애굽에서 도망하여 미디안의 한 우물에 머물렀다. 그런데 미디안에서 다시 그의 마음을 흔드는 일을 만난다. 애굽에서 도망하게 된 것은 자신의 방식으로 동족을 도우려다 생긴 일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디안 한 우물 곁에서 또다시 비슷한 경험을 한다. 남자 목자들이 먼저 물을 기르고 있는 여인들을 쫓아내는 것을 보았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에서 힘을 사용하여 약자에게 횡포를 부리는 것을 본 것이다. 모세의 마음에는 약한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다. 일어나 여인들을 도와 양 떼에게 물을 먹였다.
어린 시절의 교육이 중요하다. 분명 애굽 땅의 약자로 사는 히브리 민족에 대한 배려를 어머니에게 배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 계속되고 있다. 어린 시절에 마음에 새긴 교육, 가치가 모세의 삶을 움직이고 있다. 어린 시절에 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마음에 새긴다. 선교전략 중 ‘4/14 창’ 전략이 생각난다. 4살에서 14살 또래의 아이들에게 신앙교육을 하면 어린 시절의 신앙이 아이들의 평생의 삶을 움직인다는 생각이다. 우리도, 우리 교회도 어린아이 신앙교육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다. 평생 하나님의 자녀들로, 생명의 복음을 나누는 아이들로 길러내기를 소망한다.
모세는 과거와 달리 약자를 돕고 있다. 자기 생각과 판단으로 행동하지 않고 있다. 갈등을 피하고 약자를 도울 방법을 찾았다. 약자에게 실제적 도움이 될 일을 선택했다.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섬긴다. 약자에 대한 마음을 다한 배려와 섬김이다. 분명히 남자 목자에게 그들의 행동이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을 했을 것이고, 먼저 온 여인들이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목적만 선한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을 이루어가는 과정도 선하게 이루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아픔 중 하나는 갑을관계에서 오는 횡포이다. 갑질 논란이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적 지도층들의 일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행복을 짓밟는 행위, 최근 투표를 통해 보여준 성차별에 대한 갑질, 사회적 지위를 사용한 다양한 폭력, 심지어 자신이 출산한 자녀를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천륜을 저버린 어른들의 갑질까지 정말 다양한 아픔이 존재한다. 아픔이 많은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먼저 내 안에 회복되기 원하는 것은 ‘배려’이다. ‘배려’가 무엇일까? 낮은 자세로 이웃을 돕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다. 단순히 물질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셔서 오늘 누리는 모든 것들이다. 나눌 수 있는 것을 ‘모두’이다. 가진 것은 나누기 위해 주어진 것이지 휘두르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다. 모세의 삶을 보며 기도한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알아, 하나님을 닮아 살기 위해 내 안에 살려내야 할 ‘배려’는 무엇일까? 맡겨주신 양 떼를 어떻게 돌보며 섬겨야 하는가?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주님, 종을 긍휼히 여겨주소서. 하나님의 안목과 마음을 갖고 양 떼를 섬길 수 있게 하소서. 하나님의 성품이 저의 인격에 묻어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