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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8:53)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예수님은 소녀가 죽을 것을 미리 아셨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소녀를 살리실 계획으로 회당장의 집에 방문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그리고 부모와 함께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모든 통곡하는 사람들에게 울지 말라 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시지만 믿음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는다. 사람이 어떻게 죽은 사람을 살 수 있을까, 아무리 그가 용한 선지자이어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주님은 주저하지 않고 당당하게 아이의 손을 잡고 선포하신다. “아이야 일어나라” 그러자 아이의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났다. 그리고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고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부모에게 경고하신다. 그렇다면 죽은 아이를 살리는 현장에는 예수님의 세 제자와 부모만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비웃는 사람들을 다 내보내셨다고 기록하였다.

예수님은 왜 비웃는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셨을까? 주님이 죽은 소녀를 살린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증거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생 복락을 베푸시며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은총을 경험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생명의 주관자이시다.

우리는 때로 이성을 뛰어넘어 행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대할 때 비웃는 자들처럼 행동하지는 않는가? 우리의 시선이 현실 상황에 고정된 채 창조주 하나님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시선을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께 고정해야 한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나님이 행하시는 손길을 경험할 수 있다. 불신 세상을 이기는 힘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이다.

불신과 조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오직 믿음”을 묵상한다. 하나님 자녀는 믿음으로 산다. 나의 믿음은 반석 위에 세운 집처럼 흔들리지 않는가? 오늘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사는가?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주님의 손을 붙잡고 주와 동행하기를, 흔들리지 않는 오직 믿음으로만 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