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3: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회개의 세례를 받으러 요단강으로 나아온 사람들에게 세례 요한은 외친다. 독사의 자식들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라. 그때 무리가 묻는다.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그에 대한 세례 요한의 답이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나눠 주라고 한다.
옷 두 벌이라고 할 때 여기에 옷은 속옷이다. 겉옷과 비교할 때 속옷은 최소한의 필요이다. 그런데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을 돌아보라 하신다.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부자가 아니다. ‘무리’이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런데 한 벌 밖에 없는 사람에게 가진 것마저 내놓으라는 말씀이 아니다. 옷 두 벌 있는 사람은 한 벌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입고 있는 것 외 다른 한 벌을 나누라는 것이다. 먹을 것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먹을 것이 있는데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을 보면 나누라는 것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은 나누는 삶이다. 나누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일용할 양식도 주시고, 먹이고 입히시고 하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내 노력과 열심만이 결코 아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셔서 누리는 것이다. 또한 세상살이가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라는 이해가 있어야 한다. 함께 사는 것이다. 시선을 자신에게서 공동체에 두어야 한다. 건강한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회이다.
혹한에 눈까지 내렸다. 눈이 내려 동심이 살아나고 좋지만 또 한편으로 밤새 제설작업을 했을 분들의 수고를 생각한다. 이른 새벽을 깨우며 운전하고 예배당으로 향하는데 안전한 출근길을 위해 애썼을 손길들의 수고가 느껴진다. 안전하고 편하게 예배당까지 왔다. 이렇게 서 있는 자리에서 이웃을 배려하고 수고하며 섬김으로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오늘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 돌아본다. 가족과 사회,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내 것을 포기하고 나눌 것을 나누며 살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