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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성도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니다. 하늘에 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위해 예비해 두신 성이다. 그래서 믿음의 눈이 열린 사람들은 하늘 본향을 바라보는 눈이 열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땅보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산다. 베드로 사도 역시 거류민과 같고 나그네와 같은 우리에게 권면한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한다.

육체의 정욕은 우리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것이다. 거스른다는 것은 대적하고 대항한다는 것이다. 우리 영혼의 풍성함, 영혼의 양식, 영혼의 잘됨을 방해하고, 우리를 그와 반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모든 것들이다. 그런데 육체의 필요는 채워졌을 때 그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만, 영혼의 필요는 채워져도 그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투자를 하고 시간을 들이면 그 결과가 신속하게 나타나기를 원한다. 실제 오래가는 변화, 근본적인 변화는 순식간에 잘 일어나지 않는다. 쉽게 얻어진 결과가 쉽게 무너지듯이 서서히 시간을 두고 일어난 변화가 결국 우리 삶의 이끌어 가는 힘이 된다. 그래서 성도가 꿈꾸고 기대해야 할 변화는 서서히 내면에서부터 일어나는 변화이다.

내면에서부터 일어나는 변화는 시간이 걸린다. 눈에 잘 보이지 않기에 그 변화가 순식간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속는다. 절대 그렇지 않다. 빠른 변화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 근본적인 변화를 잃지 않아야 한다.

우리 몸의 정욕도 마찬가지이다. 정욕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가면 당장은 편할 수 있다. 그러나 내면에 쌓이는 변화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식욕이 느껴질 때마다 원하는 대로 다 채워주면 내면에 먹은 음식으로 인해 쌓이는 것들이 우리의 기초 건강을 흔든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 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방법 중 하나로 베드로 사도는 ‘선한 행실’을 제안한다(12절). 선한 행실로 우리 영혼도 생동감 있게 일어서고, 그 선한 행실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웃들도 하나님을 희미하게라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악을 행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선을 행하며, 오늘도 하늘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 삶을 살아내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