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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4: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유익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방언의 경우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가 되지 않기를 교훈한다. 방언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통역하게 하라는 이유이다. 하나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비밀을 나눌 때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비밀을 나눌 때도 조용하게 소곤거리지 않는가. 그처럼 하나님과 나 사이의 비밀 이야기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내 영을 위하고, 나의 덕을 위한 은사가 방언이다.

개인적인 은사를 공동체에 과시하고 자기를 드러내는 일들을 경계한다. 귀한 은사가 뜻 없는 소리가 되지 않도록 교훈한다. 상대방이 소리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면 외국인과 마찬가지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의미의 외국인이다. 외국에서 생활할 때 외국어가 익숙하지 않아 불편한 일을 경험해 보았는가?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 땅의 외국어는 노력하면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나 방언은 하나님만 주시고, 하나님만 들으신다. 우리가 알아듣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역할 수 있는 은사를 받아야 한다.

언어는 소통을 위해 허락하신 것이다. 나를 자랑하고 포장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나만 이것을 할 수 있는 외국어로 자랑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방언보다 우리가 더욱 사모할 은사가 있다. 교회의 덕을 세우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예언이다. 단지 미래를 예측하여 말하는 것만이 예언이 아니다. 성경의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풀어 듣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이다.

소통이 안 되는 삶을 포기하자. 불통, 자기주장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아픔이다. 자신만 가졌다고 자랑하고 드러냄으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진다. 내 생각만을 주장하고 내 목소리만을 높이는 어리석은 행동을 포기하자. 교회가 유익하고 공동체가 유익한 삶을 선택하여 살기 소망한다.

돌아가자. 다시 말씀으로, 다시 복음으로, 하나님에게로.

우리 사회가 복음으로 가득하여,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참 소통이 열리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