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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6: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고린도 안에 몸이 자유 하니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교회에도 영향을 미쳐 몸의 자유로 죄를 짓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몸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행한 모든 일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가진 자유를 유익한 일에 사용할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또 음식과 배의 관계처럼 이 세상의 일과 우리 몸의 관계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런 관계를 옳다고 말씀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합니다. 몸과 음행의 관계를 몸은 음행을 위해 존재하고, 음행은 몸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음란을 위해 있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음란한 일을 피하라는 뜻입니다.

우리 몸을 주신 중요한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를 위해 있다”. 우리 몸이 주의 일을 할 때 존재 가치가 비로소 드러나는 것입니다. 주는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라고 할 때 영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전인격입니다. 육체와 영을 함께 구속했습니다. 결코, 우리 영과 몸이 따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영은 주를 찬송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사는데 우리 몸은 육체의 필요와 쾌락을 위해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몸과 영이 분리될 수 없듯이 우리도 세상과 분리되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세상 속에서 구별되게 사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도답게 산다는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 있고, 예수 믿는 향기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모임이든지 그들만의 특징이 있듯이 성도들만의 멋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 우리의 모습이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보면서 “예수 믿는 사람은 무언가 다른 점이 있구나!”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몸을 가지고 무엇을 행할 것인지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유익한 일에 사용하는 있는지 죄를 짓는 일에 사용하고 있는지 되돌아봅니다. 또 하루를 살아갈 때 세상일에 분주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는지 생각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보여주고,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증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임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