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음행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큰 이슈이다. 드라마의 자연스러운 주제이고, 심지어는 음행을 미화하기도 한다. 화려한 불륜, 부러워할 불륜을 만들어 사람들로 은근히 동경하게 한다. N번방 사건을 비롯하여 버닝썬 클럽 등등의 사건은 음행과 연관된 일들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죄 가운데 하나이며, 또한 인간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 신자들이 이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조금만 곁눈질을 해도 끌려가기 쉬운 환경이며, 미끄러운 경사면에 서 있는 것과 같은 형편이다.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음행은 죄이다. 심지어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말씀에서 여자를 보고 마음속에 음욕을 품기만 하여도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음행은 행동으로 드러날 때만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속에 품는 것도 문제라는 뜻이다. 바울도 음행하는 자와는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당부한다(11절). 이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만큼 우리 가까이에 있으며, 누구든지 쉽게 넘어질 수 있는 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명절을 지킬 때 어떤 떡으로 예배할 것인지를 당부한다. 떡은 하나님 앞에 우리가 드리는 우리의 삶이다. 묵은 누룩, 악한 누룩, 악의에 찬 누룩을 버리라 한다. 이런 누룩이 들어간 떡은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 누룩 없는 떡,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을 드리라 한다. 순전함은 햇빛에 비쳐 보아도 흠결이 없는 상태이다. 우리 행동과 동기까지 하나님 앞에서 점검하라 한다. 진실함은 사람의 눈을 속이는 것, 속임수와 반대이다. 거짓은 모두 멈추고, 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완전함과 죄 없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바울도 이 땅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 하였다.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열어주며, 솔직하고 정직하게 살 것에 대한 당부이다. 세상과 신자를 구별되게 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투명성’이다.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나 속까지 열어 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삶을 살라는 당부이다. 복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순전한 삶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 시대의 문화와 상황에 따라 도덕의 기준까지 바뀌고 있다. 과거의 선이 오늘의 악이 되고, 오늘의 악이 내일의 선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진리는 시대를 지나면서 변함이 없다. 어제의 복음이 오늘의 복음이며, 나에게 복음이 타인에게 또한 복음이다. 오늘 내가 걸어야 할 길도 바로 그 길이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길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진리의 길이다. 그 길 위에 서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며 하나님 자녀답게 사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