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 46:11) 명절과 성회 때에 그 소제는 수송아지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 한 마리에도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하나님을 예배할 때 소제를 드리는 것과 관련된 말씀이다. 수송아지나 숫양이 아니라 어린 양을 드릴 수밖에 없는 사람, 형편이 어려운 경우에는 곡식 가루의 양을 정하지 않으신다. 형편에 따라서 “그 힘대로 하라”고 하신다.
형편에 따라 “그 힘대로 하라”는 말씀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핑계가 되어서 적당히 드려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당히”라는 표현에는 구색을 맞추듯, 형식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최선을 다해, 나에게 있는 것 중에서 최고의 것을 드리기 원하신다. 내가 스스로 물어보아도 부끄럽지 않을 “최선의 것, 나의 전부와 같은 것”을 헌신하는 것이다.
형편에 따라 드리도록 허락하신 것은 차별하지 않음이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심으로 열어주신 새로운 살 길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믿으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다. 십자가 보혈로 씻음을 받아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다.
예수께서 성전 헌금함 앞에 앉으셨다. 그리고 헌금하는 사람들을 살피신다. 어떻게 하나님께 드리는지를 보신다. 여러 헌금자가 있었을텐데 한 가나한 과부를 눈여겨 보셨다. 이 여인은 더 많은 것을 드리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두 렙돈, 당시 가장 작은 동전 두 개를 헌금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어떤 부자의 헌금보다 이 여인이 가장 많은 것을 드렸다고 인정해 주셨다. 이 여인은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먼저 받으신다. 양의 많고 적음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중심, 마음가짐이다. 어떤 마음으로 드리고 있는지 항상 살펴야 한다. 분명히 물질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다. 아까운 마음, 인색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마지 못해 억지로 누군가에 이끌려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드리는 행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이왕에 드리는 헌신이라면 최고의 것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헌신은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다. 힘껏, 아니 힘에 지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허락하신 생명에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내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하루가 저물어 갈 때 땀이 묻어 있고, 수고가 담긴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