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2:40)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 당시 서기관들이 보여준 종교적 행위는 외식이었다. 외식이란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율법이 쓰인 옷술이 긴 옷을 입고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과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고백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길게 기도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과 나라가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평안하도록 기도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한 것이다. 자신들의 신앙이 좋고, 종교인으로서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들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서기관은 성경에 능통했고, 율법의 규례를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이었다. 어디서나 자신들이 거룩하고 구별된 사람임을 드러내 보이고, 과시함으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하나님의 인정이 아니라 사람의 인정, 사람들이 높여주는 영광을 그리워했다. 회당에 들어가면 항상 높은 자리에 앉기 원했고,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기보다 인사 받기를 좋아했다.
인간으로서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신경쓰게 된다. 보여주기 위한 종교행위가 되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넘어진다.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하나님의 인정과 사람의 인정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속마음을 살펴야 한다. 왜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하는지….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도 처음부터 자신을 포장하고 위선적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에서 조금씩 변질되어 결국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자기 명예와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되었을 것이다. 변질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작은 양보쯤은 괜찮을 것이란 위안을 포기해야 한다. 말씀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살피고 말씀을 따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결국 변질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위선은 누구나 넘어질 수 있는 걸림돌이다. 우리 시선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로 옮겨야 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보실까 생각해야 한다. 성도는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더 의식하고 사는 사람이다. 겉모습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구미기 보다 속사람을 가꾸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언행이 일치하며, 누가 보아도 믿을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겉사람은 갈수록 볼품없어져도 속사람은 갈수록 멋있어지는 그런 성도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