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1: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예루살렘으로 향한 여정이 마무리되면서 눈 앞에 예루살렘이 펼쳐졌다.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고 들어가시길 원하신다. 그런데 나귀 새끼가 없었다. 그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맞은 편 마을에 아무도 타보지 않는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2절) 하신다. 누구의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왜 이렇게 끌고 와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대답은 간단했다. 누군가 왜 이렇게 하는지 물으면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대답할 말을 주셨다.
제자들도 이런 주님의 말씀에 의심하지 않고 순종한다. 순종할 때 주님이 하신 말씀대로 모든 것이 준비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의 반응도 말씀하신대로 였다. “나귀 새끼를 풀어서 무엇을 하려느냐?” 물든다. 제자들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대로 대답했다. ‘이르신 대로 말한대’ 그 말을 듣고 허락을 한다. 분명히 그렇게 묻고 허락을 한 사람은 나귀 새끼의 주인이다. 주인 아닌 사람이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허락할 수 있겠는가.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대로 행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이르신 대로’ 사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순종은 제자의 핵심 자질이다. 스승이 가르쳐 주는 대로 행하지 않으면서 제자라 할 수 없다. 제자도의 핵심 중 하나는 ‘스승의 가르침에 잘 배우고, 배운대로 스승을 본받아 사는 것’이다. 작은 예수가 되어 주님이 걸으신 것처럼 흉내내며 뒤를 따르는 삶이다.
이렇게 살려 할 때 항상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내 생각’과 ‘세상의 가치’이다. 무언가를 행하려 할 때 내 생각과 판단이 말씀의 교훈과 일치할 때는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말씀의 길과 내 생각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문제이다. 세상의 가치관이 우리를 유혹하고, 흔드는 것이다. 세상의 가치관은 이 땅의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배후세력의 영향력이다. 악한 영, 사탄의 영향력이다. 세상철학과 가치관 배후에는 악한 영의 공격이 숨겨져 있다. 그러니 말씀의 가르침과 갈등이 있을 때에는 세상 가치를 내려놓고 말씀을 따라야 한다.
제자들은 ‘이르신 대로’ 행했다. 세상 가치로 생각한다면 어리석고 무모한 행동이다. 어떤 주인이 자기의 나귀 새끼를 내어주겠는가. 답이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렇게 무모해 보이는 일을 주저하지 않고 행했다. 예수님께 자세하게 묻거나 자신들이 걱정하는 것에 대해 상담하지 않았다. 그냥 일러 주신 말씀대로 행동했다. 주님에 대한 믿음,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믿음이 무너지면, 신뢰가 무너지면 결코 행할 수 없는 일이다.
성도가 제자답게 살고, 작은 예수로 사는 길도 믿음과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제자답게 살 수 없다. 매일 순간마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살아 계신다는 것과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선하게 대하시며, 좋은 것을 주신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의 관계,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로 맺어진 관계, 사랑의 관계이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관계이다. 죽음까지도 그 관계를 끊을 수 없다. 육체의 생명만 앗아갈 뿐이다. 그렇게 맺어진 사랑 때문에 매일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랑의 관계 안에 서 있는가? 오늘 내가 살면서 알아야 할 것은 분명하게 주님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셨다는 분명한 신뢰가 있는가? 말씀대로 살면 결코 망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음을 믿는가?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그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들려주신 말씀대로 살기를 소망한다. 주님의 음성이 들려올 때 마다하지 않고, 내 생각과 판단으로 반응하지 않고 믿음으로 반응하며 따르길 소망한다. 주님을 향한 무한한 신뢰를 오늘 나의 삶으로 증거하며 살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