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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6: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님께서 고향을 방문하신다. 고향 땅에도 복음이 필요하기에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려 하신다. 그렇지만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한다. 결국 예수님은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실재를 경험할 수 있도록 권능을 행할 수 없었다. 소수의 병자만 치유하신다. 고향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였을까?

본문의 ‘배척’이라는 단어는 넘어지게 만드는 ‘장애물, 거리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에서 ‘스캔들’이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거리끼게 하고, 걸쳐 넘어지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편견’이다. 사람마다 이 땅에 태어나 자신만의 시각 세계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경험, 학식,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나름의 시각 세계가 형성된다. 문제는 그 시각 세계가 보편적이지 않고 자기중심적이고 왜곡될 때 ‘편견’을 갖게 된다. 보편적 시각보다 왜곡된 시각이 바르게 보지 못하게 만들고 의심하게 만든다. 믿지 못하게 한다.

예수님 고향 사람들이 편견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반응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목수’로 보았다. 예수님의 형제들과 누이들이 자신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결국 예수님을 개인적인 경험의 틀에 넣어서 이해한 것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고 해석하려 한 것이다. 이제껏 예수님을 보아오고 경험한 것이 믿음의 길을 방해한다. 익숙함이 넘어지게 만든다.

우리가 다시 돌아보며 점검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익숙하고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들은 아닌가. 익숙한 것이 마음 편하고 좋다. 그러나 익숙한 것을 넘어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세상을 보고, 만사를 이해하고, 행동해야 한다. 말씀의 안경만이 이 세상의 본질을 볼 수 있게 한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들을 넘어 진리 가운데로 이끌어 간다. 매일 새벽 조용히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인도하심을 구한다. 내 눈을 열어 주의 놀라운 것들을 보게 해 주시길 구한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으로 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