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0:38)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창 30:39)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떠나려는 야곱을 라반이 붙잡는다. 야곱이 외삼촌과 더 머물기로 하고 서로 품삯을 정한다. 야곱은 라반을 알았기에 외삼촌이 수용할만한 품삯을 제안한다. 염소와 양 떼에서 검은 것, 아롱진 것, 점 있는 것을 자신의 것을 구분하여 달라는 것이다. 앞으로 낳는 새끼들도 그런 것만 자신의 것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분명히 확률적으로 이런 새끼가 태어날 가능성은 작았을 것이다. 만약 높았다면 결코 라반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야곱은 가능성 더 낮은 품삯 결정을 하고 라반의 집에 머문다. 마음을 비우고 라반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것 같다. 야곱이 지난 14년을 속았다. 다시 6년을 이렇게 지내려고 한다. 또 다시 외삼촌의 간계에 넘어가는 것인가? 아니다. 야곱에게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가족을 위해 채우시고 공급하실 것에 대한 확신이다.
이런 확신을 가진 야곱은 가만히 주저앉아 있지 않았다. 염소와 양 떼 중에서 먼저 분류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 그 껍질을 벗긴다.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한다. 얼룩진 무늬를 보고 새끼를 가져 자신 몫의 점 있고, 아롱지며, 검은 새끼가 태어나게 하는 노력을 한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 방법이 아니다. 동물들의 유전자를 사람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열심히 노력한다. 야곱의 열심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동물들이 새끼를 가질 때 야곱 몫의 새끼가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우리의 삶과 피조 세계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하나님의 도우심과 일하심을 의지해야 한다.
야곱에 라반과 품삯 계약을 할 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을 가지고 자신도 노력하였다.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자신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복 주실 줄을 믿은 것이다. 때때로 믿음은 어리석어 보일 수 있다. 과학적으로 생각할 때 무모해 보일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독이 있는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다.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을 살려주시길 기도한다. 그때 하나님의 처방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라 하신다. 그리고 그 놋뱀을 바라보는 자마다 살 것이라 하셨다. 이것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불뱀에 물려 독이 몸에 퍼져가는 것과 장대 위의 놋뱀을 바라보는 것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겠는가? 결코 놋뱀이 사람 몸에 퍼져가는 독을 제거할 수 없다. 그러나 놋뱀을 바라본 자들마다 해독되고 살았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바라본 자들에게 하늘의 은혜가 주어진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2천년 전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과 오늘 우리들과 무슨 상관인가? 십자가에 죽음으로 우리들의 모든 죄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 주 예수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약속하셨다. 동일한 방식으로 이 사실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에게 영생의 복이 임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믿음만이 우리를 영생의 복으로 이끌어 간다.
야곱의 노력을 보면서 착각하지 말자. 내가 껍질을 벗기고 노력한 결과 이런 열매가 맺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그 모든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간다. 파수군의 깨어있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결과가 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살 수 있는 인생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라가는 것이 복이다. 믿음이 우리들의 삶을 바꾸고 행복하게 하는 이유이다.
오늘도 우리가 가진 믿음을 점검하자. 무엇을 믿고 있는가? 믿는다고 고백할 때 진정으로 나의 전인격을 맡기고 있는가? 하루를 살아갈 때 하나님 앞에서 참 믿음으로 소유자로 세워지길 간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