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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후 1: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두 번째 편지를 쓴다. 첫 번째 편지로 인해 생긴 재림에 대한 오해와 못다 한 말씀, 그리고 한 번 더 강조해야 할 말씀들이 있었기에 바울은 다시 편지를 쓰고 있다. 그런데 문안 인사가 끝나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격려한 후 제일 먼저 입을 열어 나누는 말씀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심판은 공의로운 심판이다. 신실하시고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무엇이 공의로운 심판의 표인가? ‘이는’으로 시작한다. 앞의 말씀을 살펴야 한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믿음이 자라고, 사랑이 풍성해지면서 여러 박해와 환난을 겪는다. 그런데 박해와 환난을 인내와 믿음으로 잘 견디고 있었다. 바울은 이런 모습을 자랑했다.

고난 중에서 믿음으로 잘 견디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를 말한다. 성도는 고난 중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잘 견딘다는 뜻이다. 우리가 고난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세워지기 위해서이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은 고난을 반드시 받게 되어 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난을 받게 되어 있다. 고난을 당할 때 넘어지지 않고 견디어 내는 자들이다. 우리 안에 자라가는 믿음의 능력이다. 풍성하게 흘러넘치는 사랑의 증거이다. 어떤 환난을 만나도 모든 환난을 견디어 내기를 소망한다.

고난에 대해 더 적극적이다. 고난, 징계, 채찍이 없으면 자녀가 아니다. 사생자이다(히 12:8). 자녀에게는 자녀다운 증거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닮는 유전인자가 있다. 그 유전인자를 바울은 ‘고난’이라 소개한다. 고난, 달갑지 않은 주제이다. 자녀의 영광, 평안함, 풍성함이면 더 좋을텐데, 우리를 힘들게 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고난이 증거라 하니 마음조차 불편하다.

다시 말씀을 주의 깊게 보자. 불편한데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도가 고난 중 견디어 내는 것이 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인가? 하나님은 환난을 받게 하는 자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신다. 환난을 받는 자녀들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신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 때 무엇을 심는지, 어떻게 사는지 하나님은 분명하게 보신다. 심은 것을 거두게 하시다.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신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살자.

고난 중에도 넉넉히 이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믿음이 더욱 자라가고, 사랑이 풍성해지는 삶을 소망한다. 사랑과 믿음으로 어떤 환난을 당해도 낙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함이 넘치는 하루를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