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4:2-3)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다 믿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의가 아니다. 자기 행위로 얻어내는 의를 주장한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와 할례받은 것을 구원의 증표로 생각했다. 착각이며 오해이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예를 들어 구원의 도리, 믿음의 도리를 설명한다. ‘이신칭의’에 대한 가르침이다.
❶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아브라함은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걸어갔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을 믿은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는 행위가 아니다. ‘여겨진 바 되었다’라는 표현은 수동태이다. 행위는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인정해 준다는 뜻이다. 인정의 원인이 자기 행위가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이 노력하여 쟁취한 것이 아니다. 은혜이다. 선물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❷행위로서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다듬어 가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변화시키신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열심이다. 아브라함의 행위가 완벽해서 의인이라고 인정받은 것이 아니다. 그의 행위와 상관없이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 아브라함의 삶에는 실수와 시행착오, 넘어짐이 많았다. 그래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기셨다. 행위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이 아니다.
❸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시점은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의로 여겨진 것은 창세기 15장 6절이다. 할례는 창세기 17장 이스마엘을 낳은 후 하나님이 주신 명령이다.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아브라함이 86세(창 16:16)이다. 할례를 행한 것은 아브라함이 99세(창17:24), 이스마엘이 13세(창17:25) 때이다. 적어도 할례받기 14년 전에 의롭다고 칭함을 받았다. 무할례시에 의롭다 인정받았다. 오직 믿음으로 받았다.
❹의롭다고 여겨지는 것은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삯은 일에 대한 대가이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을지라도 죄인을 의롭다고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5절).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다윗도 좋은 예이다.
❺우리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이다. 우리는 본래 멸망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었다. 죄인 중의 괴수, 국가대표급 죄인들이다. 이런 죄인인 나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담당하고 죽으신 것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한다. 결코 행위가 아니다. 믿음이다. 우리는 믿음이 아니면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여겨진 것이다.
❻그렇다면 우리들의 마땅한 반응은 은혜에 대한 감사이다. 우리는 감사의 표현이 서툴다. 그래서 자주 더 감사해야 한다. 서툴게 행하는 것들도 반복하다 보면 다듬어지고 숙련된다. 우리를 의롭다고 칭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 이신칭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자. 감사를 표현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평생 감사, 범사 감사의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