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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32:8)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히스기야 왕이 우상숭배를 제거하고 유월절을 지키며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고백을 하며 믿음의 선택을 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게 행동하며 바른 삶을 살아가면 형통하고 좋은 일이 펼쳐지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께 헌신하며 믿음으로 살았음에도 어려움을 만난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공격해 와서 진을 치고 예루살렘을 점령하려 한다.

믿음의 길을 걸어간다고 해서 항상 형통한 일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시련을 만나고 어려운 일을 만난다. 강력한 사탄의 공격으로 믿음의 토대가 흔들릴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 시련을 만나게 하시는 이유가 있다. 믿음을 더욱 돈독하게 하고 인내를 가르치고자 함이다. 인내를 통해 하나님이 채우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풍성한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혼자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함께할 때 풍성하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하고, 그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기도 한다.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함께하는 사람보다 능력이 있고 뛰어나면 나도 덩달아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여기에서 ‘함께한다’라는 것은 전략적 연대가 아니라 운명공동체란 의미이다.

산헤립은 육신의 팔이 함께하지만, 히스기야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었다. 육신의 팔은 자기 힘으로 사는 인생을 말한다. 산헤립은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을 조롱하면서 자신의 손을 이제껏 이긴 어떤 민족의 신도 없었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히스기야의 오만함도 자신이 얼마든지 꺾을 수 있다고 육신의 팔, 육신의 힘을 자랑한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조롱과 위협을 받을 때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다.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놓고 기도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산헤립과 그 군대를 물리쳐 주시길 기도한다. 히스기야가 이렇게 기도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반드시 우리를 도우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을 만날 때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싸워야 할 순간에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울 수 없다. 그 싸움의 결과는 분명하다.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천지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누가 대적하여 싸울 수 있겠는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기도할 때 함께하는 분이 누구신지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 있는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셨다. 그때 산헤립의 낯이 뜨거워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표현하는데 호언장담하던 자기 모습에 부끄러움, 수치스러움을 느낀 것이다.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깨닫고 돌아간 것이다.

힘이 있을 때 더 조심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셨을 때 그것을 잘 관리하고 사용하는 방법은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은 우리가 은혜와 복을 통로가 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나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섬김과 사랑으로 증언하며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