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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6: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할례는 하나님 백성 됨의 표식으로 주셨다. 아브라함 이후 모든 이스라엘 백성 남성들의 생식기의 포피를 베어내는 의식이 할례이다. 그런데 할례를 귀에 행하는가? 할례는 귀에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귀를 ‘할례받지 못한 귀’라고 말씀하신다.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을 리가 없다.

이스라엘 백성의 귀가 할례받지 못한 귀란 뜻은 ‘듣지 못하는 귀’라는 뜻이다. 들어도 자신들 마음대로 해석하는 귀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해석하면 안 듣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자신들에게 욕을 가져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말하는 사람의 뜻을 반대로 듣는 것이다. 그러니 듣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귀를 닫아 버린다. 할례받지 못한 귀, 듣지 못한 귀가 된 것이다.

자기 내면에 갇히는 것이다. 부단히 듣고 깨달을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인간의 본성 자체만으로

멋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본성은 탐욕스럽고 부정직하다. 계속하여 악을 쏟아내는 샘물과 같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계속 악한 것을 생각한다. 나를 살피고 내 안에 선한 것들을 쌓아야 선한 행동이 나오는데 그냥 내 버려둔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만 한다. 그러니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되고, 탐욕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

좌우에 예리하게 날 선 칼처럼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 영을 수술하며 거룩하게 한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깨우치고 바로잡는다. 말씀을 붙잡지 않으면 망한다. 하나님의 음성이 나를 살게 하고, 삶을 풍성하게 한다. 하나님의 앞에서 살게 한다. 하나님을 닮아 살게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게 한다.

닫힌 귀를 열고, 막힌 귀를 뚫고, 감이 약해진 귀를 예민하게 들을 귀로 다듬고 새롭게 하는 길은 하나님의 만지심뿐이다.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우리를 새롭게 해야 한다. 아니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음성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말씀이 생명이며 나를 살리는 힘임을 믿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오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가만히 있어도 들리는 것은 아니다. 말씀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구해야 한다. 성령께서 섭리하시고 조명하여 깨우쳐 주시길 간구해야 한다. 말씀의 빛이 내 삶을 환하게 비추도록 기도해야 한다. 한 번 듣고 다음에 반복하여 또 들으면 귀는 서서히 열리게 되어 있다. 듣는 귀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닫힌 귀가 듣는 귀가 되길 원하신다. 세상의 이야기도 귀담아들으면 인생살이에 도움이 된다. 우리가 해야 할 도리들을 깨닫게 된다. 징기스칸도 문맹이었던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교훈 삼음으로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고 한다. 하물며 사람의 말이 아니라,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하늘의 지혜를 품고 살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더 기대된다.

오늘 하나님의 손길을 외면하지 않고 겸손하게 순종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들려주시는 음성을 마음에 새기길 원한다. 그 말씀의 교훈을 따라 살므로 할례받지 못한 귀가 아니라 듣는 귀, 순종하는 귀가 되길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