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7:13) 혹은 징계를 위하여 혹은 땅을 위하여 혹은 긍휼을 위하여 그가 이런 일을 생기게 하시느니라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이 천문 기상을 통해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비와 눈을 주시며, 번갯불과 천둥 우렛소리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징계를 위해, 어떤 사람에게는 긍휼을 위해, 만약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면 땅을 위하여 하나님이 자연 세계를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비를 주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징계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긍휼이고, 때로는 땅에 비가 필요해서 주신다는 것은 알고 있는 일이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내리는 비가 나에게 징계인지, 긍휼인지는 누구도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없다. 명확하게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엘리후는 욥에게 이런 관점에서 교훈한다. 욥이 겪고 있는 고난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자연 현상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의 제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과 발을 묶기도 하시는데 이것은 유한한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리이다. 그렇다고 해서 욥에게 일어나는 일을 일반화하고,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일하시지만, 그것이 회개를 촉구하는 징계인지, 아니면 긍휼히 여기시며 믿음이 더욱 성숙하도록 기다리는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자세는 겸손이다.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자연 현상과 하나님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교만한 행동이다. 하나님을 들먹이며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다. 하나님을 말하는 것 같지만, 결국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만한 행동은 하나님의 심판을 부른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자세이다.
하나님은 요나의 불평을 받아주시고, 하나님이 니느웨에 가서 심판을 선포하라고 하신 이유를 깨닫게 하신다. 어리석고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요나를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깨달을 때까지 박넝쿨과 작은 벌레까지 사용하시는 분이시다. 엘리야가 큰 승리 후의 슬럼프로 “이제 내 할 일을 다 했으니 데려가 달라”는 불평을 받아주셨다. 깨닫게 하려고 먹이시고 재우시고 일으키는 일을 반복했다, 사명을 향해 달려가도록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깨닫지 못하면 깨달을 때까지 말씀하신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깨우치신다. 좋은 분이시다. 믿고 의지할만한 분이시다. 내 삶을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을 탐험해 보자. 순간마다 우리 곁에서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