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셨고,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설명하신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이라는 죄로 죽이려 한다. 그때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근거로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깨우치신다. 시편 82편 6절은 이렇게 증거한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주의 말씀처럼 성경은 폐할 수 없다. 주님은 성경의 말씀을 폐하기보다는 완성하시고 더 높은 차원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말씀의 깊은 의미를 풀어 주신다. 말씀의 문자적 이해보다 그 말씀이 품고 있는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다. 말씀의 정신을 살려내라는 말씀이다.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호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하느냐를 살피라 하신다. 선한 목자로 양 떼를 돌보고 인도하며 지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원하여 영생을 주시기 위해, 지옥이 아니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지금 하시는 일들은 삯꾼이 아니라 선한 목자로서 행하는 일임을 증언하신다.
삯꾼 목자는 위기의 상황, 맹수들이 공격하면 양 떼를 버리고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도망하지만 선한 목자는 양 떼를 끝까지 지킨다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양 떼를 돌보는 선한 목자임을 말씀하신다. 그러니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라는 말을 시비 걸지 말고 내가 행하는 일들을 보고, 전하는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되라는 권면이다.
우리의 시선이 피상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좀 더 깊은 것까지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라는 권면이다. 모든 것을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려 하면 실수할 수밖에 없다. 보이는 것과 함께 왜 이렇게 드러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호칭도 마찬가지이다. 호칭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삶이다. 어떻게 사느냐가 그 사람의 호칭까지 결정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을 한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말씀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님이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 우리는 호칭에만 집중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삶은 잃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호칭보다, 겉모양보다 예수의 향기가 묻어나는 삶을 원하신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삼아주시고, 신의 성품의 참여하여 주님을 닮아 살게 해 주신 은혜를 묵상한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놀라운 자리에 세우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이제는 일상생활에 그 향기가 묻어나길 기도한다. 신의 성품에 참여한 사람답게 살기를,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드러내며 살기를 기도한다. 말과 행동을 통해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