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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6: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교회 안에 다툼이 생겼을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를 교훈하는 말씀이다. 성도 간의 다툼을 세상 법정으로 가지고 간 사람들에 대한 교훈이다. 그들은 피차 고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무엇이 문제의 발단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스스로 해결이 되지 않으니 세상의 판단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간 것이다. 왜 바울은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사람들인데 세상이 성도를 판단하게 했다는 것이다. 성도와 세상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세상은 이 땅의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질서가 유지되고 평화가 유지된다. 성도는 그것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법도 지키는 사람이다. 상대적으로 세상 사람들보다 더 높은 가치와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세상 사람들에게 판단 받을 행동을 하면 되겠느냐는 반문이다.

둘째는 피차 고발의 단계에 이르지 말라는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고발하면 당연히 상대도 고발하는 것이 이 땅의 순리이다. 그래야 최소한 자신의 권익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성도에게 생각하게 한다. 고발하는 것과 내가 불의한 자로 낙인 찍히는 것, 고발하는 것보다 내가 속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차라리 속는 것 더 나은 일이라 제안한다.

문제는 우리 자아가 그렇게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바보 취급당하는 것 같고, 비굴하고 연약한 사람처럼 비춰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바울은 “차라리 … 당하라” 한다. 당하라는 것은 기꺼이, 자발적으로 그 일에 내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주님이 불의한 사람들에 의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모시고 그렇게 살라는 것이다.

거룩하고 존귀한 공동체인 교회가 언제부터인지 다툼의 온상이 되고 있다. 자신의 권익이 조금만 손상을 입어도 그것을 문제로 삼으며 자기 목소리를 내세운다. 분명히 개인의 권익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 때문에 요즘 나는 너무 손해 보기를 싫어하지는 않는지 스스로 돌아본다. 불의를 당하고, 속아도 피차 세상의 법정에 고발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이 보기에도 그들보다 못한 삶이 아니라 마음에 남을 메시지를 던지는 삶을 살기 원한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에 새기며 오늘 하루도 주님 걸으신 길을 걸어가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