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상대방의 머리를 잡고 칼로 상대방의 옆구리를 찌르매 일제히 쓰러진지라 그러므로 그 곳을 헬갓 핫수림이라 일컬었으며 기브온에 있더라”(삼하 2:16)
사울과 다윗의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다. 양쪽의 군대를 움직이는 아브넬과 요압이 싸운다. 본인들이 앞장서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젊은이가 각각 12명씩 나아와 겨룬다. 어느 쪽이 더 힘이 있는지 힘겨루기로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은 각기 상대방의 머리를 잡고 칼로 찌른다. 상대방의 옆구리를 찔러 일제히 쓰러진다. 무모한 힘 겨루기로 인해 아까운 젊은이들이 죽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이 ‘헬갓 핫수림’(날카로운 칼의 밭)이라 붙인다.
싸움에 특별한 명분이 없다. 그냥 힘 겨루기를 해 보는 것이다. 지혜롭지 못한 리더의 결정에 따라 싸움이 확산된다. 다윗의 신복 중에서 20명, 아브넬에게 속한 자들은 360명이 죽었다. 아까운 생명이 이 세상을 떠났다. 칼은 피를 부른다.
칼은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약속한다. 그런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자신의 유익을 지키려는 칼은 다툼을 일으킨다. 다툼이 확산되어 아까운 생명이 죽기도 한다. 그래서 욕심은 죄를, 죄는 죽음을 낳는다. 작은 욕심이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 자라서 결국 죽음으로 이끌어 간다.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을 잘 다스려야 한다. 작은 욕심이라 방심하면 안 된다. 욕심은 반드시 우리를 움직이고,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욕심은 자기중심성을 만나면 더 힘이 강해진다. ‘나’를 드러내고 나만의 세계를 만들라고 유혹한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존중히 여겨줄 것이라 유혹한다. 속임수이다. 사탄의 간계이다. 혼자 잘 된다고 하여 행복한 것이 아니다. 행복은 관계 속에서 찾아온다. 그러나 자기중심성은 철저하게 관계를 파괴한다. 욕심은 결국 개인의 행복을 빼앗아 가는 장본인이다.
성도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의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권자이시다. 생사 박탈권이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 생각대로 행동함이 무모한 이유이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한 뜻을 구하며 살아야 한다.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을 더욱 닮아가고,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기를 소망한다. 내 안에 숨겨진 욕망을 살펴본다.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내 안의 욕망이 하늘의 소명으로 변화되길 기도한다. 내 이름을 드러내고 나를 위한 삶이 아닌 이웃을 섬기고, 이웃이 웃을 수 있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