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7:19)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욥은 갑작스럽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그리고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환난과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겪으면서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 고백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감찰하시고 살피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살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눈은 자기 백성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눈이 감찰하며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든든한 말씀이다. 힘든 일을 만나고, 위험한 일을 만날 때 언제든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백성을 책임지시고 보호하시기 위해 관심을 집중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눈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살피신다는 말씀은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운 말이다. 하나님이 내 삶을 세밀하게 살핀다고 할 때 걱정도 된다. 내 삶에 하나님을 닮고 말씀대로 살면서도 죄짓는 삶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육체를 따라 살 때가 있다. 거룩하게 사는 것보다 죄짓는 삶이 우리 몸에 자연스러운 이유이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악한 마음과 죄를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에 죄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인생을 빠짐없이 살피신다. 눈을 돌이키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보호도 하시지만 우리들의 죄도 살피심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죄를 지을 환경에 놓일 때 마음속에 하나님이 떠올라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시며 애타 하시는 마음이 느껴져야 한다. 멈추어 서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하루의 삶이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소망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않으신다.’ 침을 삼킬 동안은 지극히 짧은 순간이다. 찰나와 같은 순간이다. 그런 순간마저도 하나님이 살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놓치시는 시간이 없다. 심지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까지 살피신다. 시인 다윗은 시편 139편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1-4절)
우리도 다윗처럼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의식할 때 거룩하게 살 수 있다. 하나님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면 행동, 말 하나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고민할 것이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면 죄에 빠지기 쉽다. 성도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보신다. 욥은 이 말씀을 이론이 아니라 삶에서 경험하고 있다.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않으신다’라고 고백했다. 잠시 잠깐도 그냥 내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아픔이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하고 믿음으로 사는데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여 안 계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때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가 있다. 그때까지는 침묵이 부재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내 삶을 절대 내 버려두지 않으신다. 분초를 세시며, 세밀하게 살피시고 책임지시는 하나님이시다.
든든하고 믿을만한 하나님을 꼭 붙잡고 믿음으로 살자. 말씀을 기억하며 살자. 연약함이 있어도 도우시기 위해 시선을 집중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자. 지금 당장 아무런 변화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결과가 없을지라도 낙심하지 말자.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신 분이다. 자기 백성을 절대 포기하시거나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다. 죄 많은 삶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닮아 살아가자. 놓지 않으시고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꼭 붙잡고 의지하길 소망한다. 원인 모를 아픔이 다가와도,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은 듯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다. 나를 위해 일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