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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8:11) 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제단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나를 돌아보고 다시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누구나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 제단을 만든다. 많으면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더 많은 것을 추구한다. 제2, 제3의 제단을 만든다. 자신들 가까이에서 예배할 곳을 만든 것이다. 문제는 이곳이 우상을 숭배하는 곳으로 변질된 것이다.

죄를 해결하기 위한 예배의 장소가 죄를 짓게 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시작은 편리함이었다. 언제나 가까이에서 편리하게 예배하기 위해 많이 만들었다. 그런데 그곳의 목적이 변질되고 우상을 숭배하는 곳이 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을 위한 예배 처소가 자신들을 위한 곳으로 변질된 결과이다. 자기 필요를 채우고 자기 삶의 평안을 위해 예배하는 곳이 된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보다는 자신들을 위해 예배한다.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행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한다.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삶을 버린 결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더 분명하게 받들기 위해 예배한다. 예배는 하나님이 이미 베푸신 은혜를 돌아보면서 회개와 감사와 간구를 드리는 행위이다.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잊어버린다.(14절) 예배 중에 하나님이 빠진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것을 자기를 위한 것으로 바꾼 것이다. 편리함이 우리를 어떻게 넘어뜨리는지 보여준다. 하나님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고 우상을 숭배하게 한 것이다. 편리함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필요하고 유익함도 있다. 그런데 본질이 왜곡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편리함만을 추구하다 보면 신앙도 세상과 타협하게 된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나를 위한 결정을 한다. 편리함과 그럴듯한 합리화를 경계해야 한다. 오늘날 사탄이 즐겨 사용하는 도구 가운데 하나가 편리함이다. 하나님을 위해 고생했으니 조금 즐겨도 된다고 유혹한다. 분명히 말은 맞는데 이것이 선을 넘어서는 순간 죄가 된다.

세속화의 강력한 힘이 우리를 거세게 공격해 온다. 모두가 다 그렇게 산다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은 성도의 삶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성도의 삶은 구별된 삶이다. 무언가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 편리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그 여유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삶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며 섬기는 삶이다.

하나님이 우리 삶의 기준으로 주시는 말씀을 가까이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지혜가 나오고, 세속화의 거센 물결에 대응할 지혜가 나온다. 한번 말씀을 듣고 예배함에 만족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주관하고 이끌도록 마음 중심에 말씀을 심어야 한다. 말씀을 되새김질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에 심긴다.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이다.

한 구절이라도 말씀을 암송하면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뜻이 새겨지길 간구하자. 말씀을 묵상하고 되새김질하며 암송하는 삶이 회복되길 기도한다. 말씀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지 않고 말씀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묵상하도록 성령께서 조명해 주시길 기도한다. 깨달은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내 힘과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하늘의 지혜와 능력으로 살기를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