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2: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활동이 어려운 중풍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온다. 자신의 발로 걸어서 나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네 사람이 침대 네 모서리를 어깨에 메어 옮겨 주었다. 중풍병자는 그 침대에 누워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냥 지나가다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개인적인 관계가 있는 친구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마다 어떤 질병이든지 다 고침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친구도 예수님 앞으로 데려 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을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려주고, 친구의 동의를 얻어 침상을 통째로 메어 예수님께로 나아간다. 어깨에 메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짧은 거리가 아니라면 더욱 힘들고 불편한 일이다. 주변의 바라보는 시선도 불편했을 것이다. 무엇을 하려고 잘 간호해야 할 환자를 저렇게 옮길까 곱지않는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환자의 인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네 명의 친구는 기꺼이 어깨에 메는 수고를 하고, 불편한 시선들과 뒷 담화를 감수한다. 그리고 예수님 앞으로 중풍병자를 메어 간다. 좋은 친구들이다.
좋은 친구는 위기상황에서 구별된다고 한다. 어려움 가운데 처한 친구를 떠나지 않고 곁에서 돕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는 뜻이다. 어려움을 만난 친구를 외면하고 모른 척하는 것은 친구가 할 마땅한 처사가 아니다. 좋을 때든지 나쁠 때든지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친구, 힘들 때 더 가까이에서 힘이 되어주고 함께 하는 그런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좋은 친구가 있다. 우리의 육체적 필요만이 아니라 영적인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친구이다. 예수님이시다.
우리의 육체적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친구는 많이 있다. 그러나 영적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친구는 한 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 연약함이 무엇인지 알고 때를 따라 도와줄 수 있는 친구이다.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먼저 고난을 겪으셨다. 우리가 살면서 만날 고통을 손수 겪으셨다. 그래서 우리가 시험당할 때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다. 우리를 친구 삼아주신 예수님은 배신하지 않으신다. 평생 함께 하시며 도우신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
그 주님 앞으로 나아간다. 육체적 필요만이 아니라 영적 필요까지 채워주시는 주님 앞으로 나아간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길 기도한다. 여전히 끝나지 않고 우리 삶을 흔들고 있는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사라지길 소망한다. 한 사람의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더욱 간절히 기도한다. 연약하고, 한계를 가진 인간의 지혜와 노력에만 맡겨두지 마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보여주소서. 회개합니다. 악한 길에서 돌이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합니다. 긍휼히 여겨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