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4:24)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하나님께 하솔왕 야빈을 진멸하게 하신다. 그런데 단번에 이기게 하시는 것이 아니다. 점점 더 눌러서 진멸하게 하신다. 어떤 일들은 단번에 이루어 주시지만 어떤 일은 이처럼 점진적으로 이루어 주신다. 특히 우리들의 삶에 자리하고 있는 옛 습관들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신앙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때 서서히 변화된다. 인격의 변화는 더욱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서 얻어진 것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다져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것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한다. 우리들의 노력만으로 부패한 우리의 본성을 다듬기 어렵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이다. 그 은혜가 우리들의 인격을 다듬어 가게 하신다. 스스로 깨닫고 뉘우침으로 이루는 변화는 한계가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한다. 우리 인격에 하나님의 흔적이 드러나야 한다.
하나님의 목표는 진멸이다. 우리 삶에서 완전히 적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때까지 하나님은 변함없이 자기 백성을 후원하고 지지하신다.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들의 구원을 이루어 가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이다. 우리 안에서 이 일을 시작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완성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한순간의 성화가 가능할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신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점진적 성화를 주신다. 오늘도 하루를 살면서 내 안에 다듬어져야 할 것은 없는지 살펴보자. ‘점점 더 눌렀다’는 표현을 다시 묵상한다. 눌렀다는 것은 ‘할라크’ 걷는다는 뜻이다. 함께 걷는다는 표현에 자주 사용된다. 함께 걸어가면서 완전히 제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필요하다. 세상의 강력한 세파가 우리를 공격해 온다. 물질과 풍요라는 유혹이다. 자유와 인간성 존중이라는 유혹이다. 어떻게 하나님 백성답게 살 수 있겠는가? 점점 더 눌려서 결국은 진멸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회복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