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 2:16)
(요 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신다. 단순히 분노를 표출하는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예배의 순수성을 회복하시려는 메시아적 행위이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막 11:17)이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이를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곳으로 변질시켰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는 거룩한 공간이 세속적 탐욕과 부패의 온상이 되면 안 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향한 열심의 본질을 확인할 수 있다. 시편 69편 9절의 “주의 집을 위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셨나이다”라는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이다. 참된 경건은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는 것을 방치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할 때 마음이 아파해야 한다. 우리의 열심도 세상의 이익을 추구하고 행복에만 몰입되면 안 된다. 아버지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예수님은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르신다. 단순한 소유권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권위에 대한 선포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전에 대한 주권을 드러내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집을 정결케 할 권세가 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이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동시에 구원자로 인정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오늘 우리는 성도의 몸과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17, 6:19)임을 알고 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이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교회 공동체도 세상의 모임과 달라야 한다. 하나님의 집, 성전은 거룩한 용도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의 몸이 불의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의의 도구로 드려져야 한다.
‘장사하는 집’은 히브리어 ‘베이트 미크하르’의 개념으로, 상업적 거래의 장소를 의미한다. 당시 성전 뜰에서는 제사에 필요한 동물을 팔고, 성전세를 위한 환전이 이루어다. 겉으로는 예배를 돕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종교를 이용한 착취와 이득 추구의 현장이었다. 칼뱅은 이 구절을 주석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사람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때, 그것은 우상숭배”라고 경고했다.
복음이 세속적 목적을 위해 도구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오늘 우리 교회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교회가 성장, 재정, 명성을 추구하며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릴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개인의 삶에서도 경건의 실천이 자기 의를 추구하고,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될 때, 우리는 우리 마음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드는 것이다.
“진정한 경건은 하나님 그분 자체를 목적으로 하며, 그 외 어떤 것도 궁극적 목표로 삼지 않는다”(리차드 백스터) 예배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나의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삶 전체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시간, 재능,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별된 존재이다. 세상의 가치관과 타협하며 우리 자신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면 안 된다. 그리스도의 열심을 본받아야 한다. 우리 마음속의 세속적 동기들과 불순한 목적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우리 교회 공동체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거룩한 처소가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