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잠깐 있다 지나갈 것과 영원한 일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잠깐이면 좋을 것과 영원했으면 하는 것이 다를 것이다. 시간상으로 잠깐과 영원은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연약한 우리는 비교함을 통해 더 분명하게 깨닫는다. 잠깐 근심하게 될 일과 크게 기뻐할 일이 비교된다. 비교할 수 있겠는가? 비교되지 않는 일이다. 근심은 잠깐이지만 기쁨은 크게 기뻐한다. 길게 기뻐한다.
우리를 흔드는 근심거리들은 피해갈 수 없다. 살아가면서 잠깐씩 걱정하고 염려한다. 여러 가지 시험 거리 때문이다. 다양한 시험 거리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 야고보는 기쁘게 여기라 당부한다. 시험하고 흔드는 일이 어떻게 기쁨이 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래서 야고보는 기쁘지 않지만 기쁘게 “여기라” 부탁한다. 당장 눈앞에 근심할 일, 시험하는 일이 다가올 때 의지적으로 행동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시험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는 것이다. 시험을 통과한 후에 주어질 유익을 미리 내다보며 견디어 내는 것이다.
잠깐 근심하는 것과 대조되는 것은 크게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가 견디며 바라보는 것은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유업, 하나님 나라, 영원한 생명, 구원이다. 부활의 주님을 따라 우리도 영생 복락을 누릴 것이란 산 소망이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늘에 간직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이 땅에서 누리길 원한다. 이 땅에서 맛볼 수 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사라질 것들이다. 잠깐의 맛보기를 통해 영원히 누릴 것에 대한 간절함과 소망이 더 커지는 것이다.
성도는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다. 이 땅의 고난과 아픔을 믿음과 소망으로 견디어 내는 것이다. 세상이 주는 편안함과 유익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것만을 추구하며 사는 어리석음을 내려놓기를 소망한다. 흔들리지 않는 하늘의 소망, 주님을 붙잡고 걸으신 길을 뒤 따르는 믿음, 힘들고 지칠 때마다 부활의 아침을 생각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마무리하시고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주실 날을 기다린다. 잠깐의 근심과 걱정, 시험과 장차 주어질 영원한 복락, 구원과 비교할 수 없다.
오늘도 하늘과 땅 차이라는 말을 되새긴다. 비교할 수 없는 것을 자주 비교하면서 힘들어하든 어리석음을 회개한다. 그리고 하늘의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그 하나님이 내 삶의 인도자라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치고 힘든 일이 다가올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며 기뻐하며 견디고 이겨내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