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예수님과 그 가족이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친족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한다. 유월절을 지키고 돌아오는데 예수의 부모는 동행하는 사람 중에 예수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지 않고 출발한다. 결국 하룻길을 갔을 때 동행 가운데 예수가 없음을 확인한다. 아마 저녁 식사할 때가 되어서 확인한 것인지, 잠자리에 들기 위해 확인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하루 정도 시간이 흐른 것이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닐 때 당황하는 것처럼 예수의 부모도 같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런 상황이 익숙했을 것이다. 과거에서 이렇게 친족들이 함께 어느 곳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 자주 예수님을 일행들 속에서 부모와 떨어져 이동했을 것이다. 아니라면 어느 부모가 어린 자녀를 그냥 내 버려두겠는가, 소홀히 여기겠는가. 그럴 부모는 없다.
거기에 이 예수를 어떻게 얻었는가. 출생의 비밀이 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다.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이름도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분으로 예수라고 지은 것이다. 하나님이 이 아이를 특별하게 생각하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아무리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과 동일하게 엄마의 젖을 먹고 양육을 받아 성장하면서 뛰논다고 해도 그는 우리의 구원자 예수이다.
그 부모의 마음에 분명하게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성령으로 잉태된 특별한 아들 예수를 그들은 생의 순간마다 관찰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에 하나님의 손길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길이 드러날 때마다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동역자로서 최선을 다하고자 헌신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가.
하지만 익숙한 것을 항상 점검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오늘 말씀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한다’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말씀이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기에 당연히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익숙함이 넘어지게 하고 우리를 실패로 이끈다. 익숙한 일일지라도 매일 새롭게, 그리고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을 소망하면서 더욱 힘쓰며 살아가는 사람이 성도이다.
잃어버리는 데는 하루가 걸렸다면 그 잃어버린 것을 찾는 데는 사흘이 걸렸다. 잃기는 쉽지만 찾기는 어렵다. 찾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달리는 자동차도 같을 거리를 이동할 때 멈추지 않고 가는 것과 멈췄다 다시 출발하는 경우를 비교해 보면 후자가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우리의 힘을 비축하고 꼭 써야 할 곳에 사용하며 살기 위해서는 간직할 것을 잃지 않아야 한다.
마땅히 간직해야 할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음’은 유혹이 많고, 신앙을 흔든 것들이 많은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이다. 깨어 있는 방법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 소명을 생각하는 것이다. 내 삶의 방향 설정을 확인하는 것이다. 지나간 일을 잊고 부르심을 생각하는 것이다.
신앙의 기본기에 해당하는 말씀 묵상과 기도, 예배의 자리, 봉사와 섬김의 자리, 나눔과 베풂의 자리, 훈련과 양육의 자리 등등.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나는 서 있는가? 하나님을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원하신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부르심을 따라 살기를 원하신다. 오늘도 나를 살피며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점검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