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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0: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하나님은 힘이 센 천사가 들고 있는 작은 두루마리를 사도 요한에게 가지라 말씀하신다. 사도 요하는 주저하지 않고 그 두루마리를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자 천사는 이 책을 갖다 먹어 버리라고 한다. 그런데 그 두루마리 책을 먹을 때 그 맛이 입에는 달았지만, 배에는 쓰디쓴 것 같았다. 쓴 것을 먹으면 배앓이를 하는 것처럼 요한도 배앓이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분이시다. 말씀을 통해 믿음의 비밀을 알려 주시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지침도 분명하게 주신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불신자들과 다르게 사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한 사람이 되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가지라고 하신다. 말씀을 주시면서 강제로 밀어 넣으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필요를 느끼고, 우리 자신의 결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길 원하신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스쳐 지나가는 좋은 말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가지라는 것은 내 것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나의 말씀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가지라는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한 사도 요한은 말씀을 손에 들고 있는 천사에게 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의 말씀하실 때 외면하거나 한 귀로 듣고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주신 말씀에 순종했다. 달라는 요청을 하는 요한에게 천사는 ‘갖다 먹으라’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가져다 먹는 것’이다. 요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 먹는다.

하나님 말씀을 ‘가져다 먹는다’라는 것은 말씀을 ‘받아들인다’라는 뜻이다. 말씀이 교훈하는 것을 나를 위한 말씀으로 받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은혜가 된다는 표현을 한다. 은혜가 된다는 것은 마음에 울림이 있고, 깨달음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음에 감동이 되는 말씀을 받을 때 그 말씀은 꿀송이처럼 달게 느껴진다. 송이 꿀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이다. 달고 오묘한 말씀이다.

입게 달게 느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입을 통과하여 배속으로 내려가면서 소화가 되려 할 때는 배앓이를 한다. 쓴 약이 몸에 이로운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쓴 약이 된다. 내 삶을 수술하고 변화시키는 좋은 약이 된다. 배앓이를 잘 견뎌내고 소화되면 그 말씀은 힘이 되고, 능력이 된다. 나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며, 세상 사람과 구별되게 살 수 있는 근거이다.

말씀을 받아먹어 소화하는 과정은 어려운 과정이다.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려 할 때는 배앓이를 한다. 말씀이 우리 삶 속으로 들어와서 체화되기까지는 몸살을 하게 되어 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은혜를 구해야 한다. 말씀을 변경하거나 왜곡시키지 않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믿음을 구하는 것이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예수님은 항상 말씀을 품으셨다. 애송하셨다. 사탄이 시험하는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말씀이 살아 숨 쉬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생을 드렸다. 말씀이셨던 주님을 바라본다. 내 안에도 그 말씀이 살아 숨 쉬며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안에서 오늘을 살 수 있기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