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1:3)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입다는 큰 용사였으나 출생 배경이 좋지 않았다. 기생이 낳은 아들이었다. 성장기에 이복형제에 의해 버림을 받은 사람이다. 그가 형제들을 피하여 거했던 땅은 ‘돕’ 땅이다. ‘돕’은 히브리어(토브)로 ‘선하다, 좋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좋은 땅, 선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느껴지는 땅이다.
이런 곳은 상처 입은 사람이 머물기 좋은 곳이다. 상처 입은 사람이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통해 치유 받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곳이다. 연약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고 회복될 수 있는 땅이다. 열심히 수고하며 땀을 흘려 자수성가할 수 있는 곳이다.
입다가 함께 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잡류’이다.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삶을 사는 사람을 뜻한다. 허송세월하는 건달들, 혹은 불량배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건달들과 입다가 함께 한 배경이 무엇인가?
성경의 표현을 좀 더 자세히 보자.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돕 땅의 입다의 소문을 듣고 건달들이 모여들었다. 입다가 건달들을 이끌 ‘두목감’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입다도 그들과 함께 다닌다. 오늘날 조폭을 연상케 한다. 좋은 땅에 건달들이 가득했다.
좋은 땅, 돕 땅이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인해 좋은 땅이 되지 못한다. 어디에 거주하느냐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땅에서 “내가 어떻게 사느냐”이다. 그리고 “누구와 함께 사느냐”이다. 우리의 삶이 이웃에게 보여 지게 되어 있다. 가까이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같은 생각을 품은 사람이 함께 거하기 좋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잡류’처럼 사는 삶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 백성을 성도라고 한다. 성도의 가장 큰 특징은 거룩함이다. 세상과 구별됨이다. 먼저 내 삶이 거룩함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을 닮아 살고자 말씀과 기도로 굳건하게 서야 한다.
말씀이 내 삶을 움직여 거룩함을 만들어 내기를 소망한다. 그 거룩함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주변이 거룩함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야 한다. 그러면 거룩한 공동체가 세워진다.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거룩한 무리가 함께 모인 곳,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면 소망이 생긴다. 세상이 변화되고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꿈이다. 오늘도 거룩함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