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사도 요한이 주님으로부터 계시의 말씀을 받을 때 ‘인자 같은 이’ 주님을 만나고 죽은 자 같이 된다. 계시의 말씀을 받고 우리 주님을 뵈올 때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생각되지만, 그 무게감이 만만치 않다. 오죽했으면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기록하겠는가. 거룩 그 자체이신 우리 주님을 대면하여 뵈옵는 것은 ‘은혜’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심판주이시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인자 같은 이, 예수 그리스도는 장엄하고 위엄이 있다. 부정한 것과 접촉하면 부정해지고, 거룩한 것과 접촉하면 거룩해진다는 생각을 가진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도 요한은 부러운 사람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만지심을 받았으니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 손에 쓰임 받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하나님 은혜’의 풍성함은 죽은 자 같은 사도 요한에게 다가온 손길이다. 그 ‘인자 같은 이’ 예수 그리스도, 이 땅을 섭리하시고 다스리시는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오른손을 얹어 주신다. 능력의 오른손이다. 주저앉아 있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죽은 자 같은 요한을 일으켜 세우는 손이다. 따뜻한 사랑의 손이다. 사람을 짓누르고 억압하는 모든 짐을 벗기고 가볍게 일어서게 하는 손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주저앉아 있을 때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인간의 몸을 입고 고난을 겪으신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이시다. 힘들어 쓰러져 있으면 손잡아 일으켜 주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와 기도하라고 하신다. 우리의 연약함을 내려놓고 기도하면 반드시 들어주시고, 은혜로 채워주시는 분이시다.
만지심에 이어서 말씀으로 위로해 주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예수님을 보고 죽을 것을 두려워하는 요한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지금 왜 내가 두려워 떨고 있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아신다. 우리 마음에 품은 생각과 계획도 아신다. 우리들의 모든 것을 아신다. 모든 것을 아시기에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주실 수 있다.
우리의 시작이며, 또한 우리 마지막을 결정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이 두려워하지 말라 격려해 주신다. 산 자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힘을 내어 일어서라는 것이다. 내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말씀에 눌려 쓰러지지 말고 잘 기록하고, 잘 받아먹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고난받는 백성들을 격려하라는 당부이다. 말씀을 품고, 말씀이 교훈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명자로 살라는 부르심이다.
우리를 부르시고, 사명을 주신다. 그리고 사명을 이룰 힘과 능력도 주신다. 요한을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만지시는 것이 그와 같다. 쓰러져 있는 엘리야를 일으켜 먹이시고 힘을 주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명의 길을 걷게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이유이다.
일으켜 세우시는 따뜻한 주님의 손길을 바라본다. 오늘 내 삶에 함께하는 주님의 손으로 인해 당당하고, 또 힘있게 하루를 시작하며 기도한다. 세상의 유혹과 사탄의 공격이 아무리 강력해도 함께하시고 붙잡아 주시는 손길이 있음을 기억하며 흔들리지 않기를, 믿음의 경주를 계속하길 소망한다. 주님, 오늘 하루도 넉넉하게 이길 수 있는 ‘하늘의 은혜’를 내려 주소서. 주님의 손으로 어루만져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