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8:14)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반복하여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 역사를 섭리하시고 이끌어가실지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기에 나라들이 어떤 흥망성쇠의 길을 걷는지 말씀하신다.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도 꺾일 때가 있다. 문제는 그 힘이 자기의 유익을 위해 휘둘릴 때 고난을 겪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하나님이 지키실 것 같은데, 성전도 어려움을 겪는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게 살고자 몸부림친 사람들도 고난을 겪는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꺾이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악한 권력은 핍박한다. 성소를 더럽히고 하나님이 아무런 힘도 없는 존재라고 멸시하고 비난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 같다.
하나님의 백성이 받는 고난의 때는 영원하지 않다. 때가 있다. 이천삼백 주야까지라고 하였다. 그 기간이 얼마인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끝이 있다는 것이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새벽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또한 더럽혀진 성소도 정결하게 회복된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회복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예배하는 백성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시키실 때 예배도 회복되게 하시는 이유이다. 복음을 선포하고 전도를 하는 것은 예배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예배를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단순히 복음을 들려주는 것이 끝이 아니다. 그들이 예배당에 나와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며 말씀 앞에서 살아가는 예배자가 되는 것이다.
성도의 삶은 예배자로서 삶이다. 일상생활 중에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찾으며,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다. 이런 삶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성도가 “선을 행하며 나누어 주는 삶”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히13:16), 예배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바른 예배자를 찾으신다. 자기 필요를 찾고 자기를 드러내는 예배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를 찾으신다. 예배당에서만이 아니라 생활현장에서도 예배자로 살기를 원한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만 예배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