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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9:1)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고 하신다. 추수 때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의 풍성함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모습이다. 농부가 씨앗을 심을 때는 수고하며 고민한다. 어느 정도 수확이 나올까 생각한다. 하지만 추수의 때는 얻어지는 열매로 인해 저절로 기쁨이 나온다. 씨앗의 비밀은 심어본 사람이 안다.

하나님은 기뻐해야 할 날에 왜 기뻐하지 못하게 하는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둘째는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쁨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섬김으로 생긴 기쁨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교적인 음란한 퇴폐행위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수확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특히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는 것과 결실의 때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고, 햇빛을 주시기에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 농부들이 아무리 수고하여도 태풍이 불어오고 비람이나 눈비가 쏟아지면 그해 수확이 보장되지 않는다. 날씨가 따뜻해야 할 때 우박이 내리고 서리가 생기면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농부의 일반적인 마음을 하늘이 도왔다는 것이다. 분명히 자기 노력도 있지만 하늘이 돕지 않으며 풍성한 열매는 생각할 수 없다. 타작마당의 기쁨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바알이 아니다. 바알이 비를 주관하고 풍성한 열매를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내 스스로 그렇게 세뇌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우상의 특징이다.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이 모든 열매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바알에게 나아가 찬양을 하고 바알을 높이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좋아할 수 없다. 타작마당에서 음행은 바알 종교의 대표적인 종교행위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삶을 산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들을 위한 삶을 살고, 결국 자기 자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과 열심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은 사라지고 끝날 때가 있다. 이 땅의 모든 피조물과 그 부산물들은 유한한 것이다.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다. 때가 되면 썩어지고 사라질 것이다. 풍성한 수확은 우리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다. 우리의 지혜가 열매를 풍성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의 기도 제목 중 가장 많은 부분은 먹고 사는 문제이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다 걱정 없이 좋은 직장에 들어가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이다. 자기를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 종교를 자기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믿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인정하며, 그것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우리가 노력하고 땀 흘려 수고한 대가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다. 나름 내가 실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뛰어나기 때문만도 아니다. 수고롭게 살아가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누리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자. 이방 사람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처럼 자기 자랑에 몰두하지 말자.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은혜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