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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2:23)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의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한마디의 말이 생명을 살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죽음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래서 말을 할 때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해야 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해야 한다. 감정이 흥분되어 절제되지 않을 때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때가 위기의 순간이며 넘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아도니야는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찾아와 간청한다. 솔로몬 왕에게 청하여 수넴 여인 아비삭을 아내로 삼게 해 달라는 것이다. 수넴 여인 아비삭은 다윗의 노년에 다윗의 건강을 위해 곁에서 수종들던 여인이다. 밧세바는 아무런 의심없이 화평을 위해 찾아왔다는 말만 믿고 솔로몬 왕에게 아도니야를 대신하여 간청한다.

밧세바에게는 분별력이 없었다. 구해서는 안 될 것을 구했다. 솔로몬은 아도니야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당시 습관으로 선왕의 여인을 취하는 것은 왕권을 계승할 권리를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선왕의 여인들을 관리하는 일이 후대 왕이 감당해야 할 중요한 일이었다. 이런 관습을 잘 알았던 솔로몬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거절 정도가 아니다. 베푼 은혜에도 불구하고 왕좌를 찬탈하려고 속셈을 꾸미는 아도니야를 단죄하고 단번에 처형한다. 아도니야 입장에서는 정말 속셈을 숨기고 끝까지 순수한 사랑의 요청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설령 그것이 진실일지라도 넘어서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셨다. 자신의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미리 생각해 보았어야 한다.

아도니야가 직접 솔로몬 왕에게 찾아가 아비삭을 구하지 않고 솔로몬의 어머니에게 찾아간 것은 그도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숨겨진 속셈, 그 행동을 통해 얻고자 하는 무엇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솔로몬에게는 불편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그러니 결정할 당사자가 아닌 밧세바에게 찾아간 것이다.

아도니야의 속셈은 반역을 위한 중요한 근거를 만들기 위한 포석이었을 것이다. 밧세바는 이 요구를 단순한 여자 문제로 생각했거나, 다윗이 아비삭과 동침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비삭을 후궁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아도니야의 음모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솔로몬은 나이가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의 속셈을 정확하게 간파했다.

밧세바의 어리석음을 책망하고, 하나님의 뜻에 도전한 아도니야를 처형하도록 명령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한 것이다. 사탄은 언제나 우리를 유혹하고 속이고 넘어뜨리는 존재이다. 숨겨진 속셈을 가지고 간교하게 다가올 때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솔로몬처럼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 말씀에서 흘러나오는 담대함이 있어야 한다.

영적 분별력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흘러나온다. 하나님과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드려야 한다. 오래 사귀고 더 많이 알고자 시간을 내어야 한다. 그래야 관계가 깊어진다.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도 시간이 더 드려야 한다. 말씀의 세계가 열리고 말씀의 의미가 마음에 새겨져야 사탄의 유혹을 명확히 분별할 수 있다. 오늘도 말씀을 따라 걷는 하루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분별력으로 믿음의 자녀답게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