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26: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웃시야는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나라가 강성해지고, 평안할 때 교만하게 행동한다. 제사장이 할 일을 자신이 하려 하다가 나병에 걸리게 된다. 병이 생긴 후 죽을 때까지 나병으로 고생하며 백성들과 끊어져 지내야 했고, 죽어서도 왕들의 묘실에 묻히지 못하고 그 묘실이 접한 다른 땅에 묻힌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교만하게 행동한 결과이다.
하나님은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라고 가르친다. 교만은 피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만 변화가 있고, 무언가 잘 되면 자신이 잘해서 이런 결과가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고, 이름을 새기려 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작동하는 것이다. 특별한 사람에게만 교만의 유혹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찾아오는 유혹이다.
교만하면 분별이 흐려지게 되어 있다. 웃시야 왕도 왕이 분향하려 할 때 선을 넘는 일이라고 제사장 아사랴를 비롯한 용감한 제사장 80명이 충성스럽게 직언한다. 왕이 분향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만류하고 절대 군주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웃시야는 충언하는 제사장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도리어 화를 낸다. 화를 내는 것은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교만하면 자기 생각이 가장 옳다고 믿는다. 어리석은 사람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자신이다. 주변 사람들이 좀 더 객관적 입장에서 자기 존재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자기에게 듣기 좋은 말에는 맞장구를 치지만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배척한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사랴와 함께한 80명 제사장의 말보다 자신이 더 옳다는 것이다.
웃시야는 만류하는 제사장들과 다투면서까지 분향하려 한다.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고 하다가 화를 낸다. 분향하려 하는 웃시야를 제사장들이 막아선 것이다. 그런데 웃시야는 멈출 생각이 없다. 끝까지 자기 생각대로 분향을 강행한다. 교만한 사람의 행동이다. 항상 언제든지 자신이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마음과 귀를 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이웃의 이야기를 들을 귀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웃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판단을 내려놓고 순수하게 듣는 것이다. 그럴 때 자기 모습이 보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상황이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좋은 길을 보여주시고, 그 길로 인도하신다. 웃시야를 사랑하시니 제지하는 제사장을 붙여 주신 것이다.
때로는 우리의 길을 막아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 우리는 우리 행동을 막는 사람을 불편해하고 나와는 상관없거나 나의 적이라고 생각한다. 왜 막아서는지 확인해야 한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 때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마음이 열린 사람이다.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듣는 것이다. 상대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낼 기회를 주어야 한다.
바른 안내를 하는 제사장에게 화를 내는 웃시야를 결국 심판하신다. 제사장들이 보는 앞에서 이마에 나병이 발병하게 하셨다. 분명히 보고 알 수 있도록 하셨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심판하신 것은 우리에게도 경고하시는 것이다. 항상 십자가 은혜 아래에서 말씀을 붙잡고, 말씀의 교훈을 따라 말씀이 인도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다. 그 하나님 앞에서 나를 살피며 겸손하게,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