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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맹인인가?(요 9:40)

(요 9: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님은 초막절에 자신이 세상의 빛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그 실제적 증거로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의 눈을 치유하여 주셨다. 어둠 가운데 다니지 않고 빛의 자녀로 살도록 눈을 띄어 주셨다. 그리고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내가 심판하러 왔는데, 보지 못하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본다고 하는 사람은 맹인 되게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한다. “우리도 맹인인가?” 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육체의 눈도 멀쩡하고, 하나님 말씀도 연구하여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우리에게 맹인이라고 하는지 반문하는 것이다. 우리가 맹인일 수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질문을 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가치 기준과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다.

육신의 눈을 뜨고 있어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의 세계, 영적인 것을 보는 눈이 닫힌 맹인이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진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믿고, 그 일을 여전히 지금도 행하심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이 행하시는 일을 믿어야 한다.

바른 믿음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바르게 믿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에 대해 경험하고 배워가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가 지혜롭게 지적 능력이 있어서 믿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믿게 해 주셔서 믿음이 생긴 것이다.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록하고, 진리에 대해 기록한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질문하게 한다. 말씀 앞에 서서 스스로 묻고, 그 물음에 대답함으로 진리를 깨달아 가는 것이다. 진리의 거울로 나를 살피고 돌아봄으로 나를 다듬어 가는 과정이 믿음의 길이다. 하나님을 닮아 거룩하게 되어가는 과정이다.

바리새인들은 “우리도 맹인인가?”라고 묻는다. “나는 맹인인가?”가 아니다. ‘우리’라는 집합명사를 통해 자신을 공동체에 담고 있다. 하지만 우리라는 표현 때문에 그들이 이기적인 믿음을 뛰어넘는 신앙적 모습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믿음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기 모습을 회피하는 반응이다. 말씀을 깨달았을 때 그 적용은 개인적으로 해야 한다. 이웃이나 공동체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의 믿음을 결정한다. 말씀의 예리한 칼이 내 마음과 생각을 수술할 때 하나님의 손에 기쁨으로 내어드려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가 열린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계가 열린다. 우리 가족 중 다른 사람을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니다. 목장 가족 중 누구를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주신 말씀이다.

내가 변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품고 그 말씀대로 내 삶을 다듬어야 한다. 주님의 가르침, 그 가르침을 기록한 말씀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말씀의 거울 앞에 서야 내가 누군지, 나의 현 상태가 정확하게 보인다. 말씀의 주님을 만남으로 매일 주님의 은혜 아래에서 생활하길 소망한다. 주님을 손을 붙잡고 따라가길 소망한다. 육신의 눈은 뜨고 있으나 영적인 맹인으로 살지 않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