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0: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삶의 속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방향이 먼저 바로 설정되고 그 후에 속도가 더해져야 한다. 만약 방향이 잘못되었는데 속도만 높이고자 애를 쓴다면 정반대 혹은 잘못된 길로 더욱 멀어지는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도 올바른 지식이 밑받침되어야 한다. 바른 지식이 없이 열심만 앞세우다 보면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다. 원문에는 ‘올바른’이라는 단어는 없다. 그러나 문맥을 읽어보면 분명 바른 지식과 잘못된 지식을 전제하고 있다. 바른 지식을 따른 열심이 아니라 잘못된 지식을 따른 열심이 문제이다.
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은 열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❶자기 의를 세우려는 열심이다.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하고, 교회를 위해 일을 한다고 고백한다. 문제는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지만 아무도 자기 의를 세우려 한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다 하나님의 의를 세우려고 한다고 고백한다.
❷이 사람들은 다 ‘힘써’ 이 일을 한다. 자기 열심으로 하는 일이기에 더 ‘힘써서’ 행한다. 잘 이루어지지 않으니 ‘힘쓸 수밖에’ 없다. 힘쓰지 않으면 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부패한 우리의 본성이 은근히, 자연스럽게 죄로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❸이들의 목표는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이다. 자기의 의를 세우려는 것이다. 자기 행위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우리들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사64:6).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롬3:10).
❹문제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고 열심을 내지만 정반대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잘못된 지식은 이율배반적이다. 잘못된 지식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든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 내 생각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❺우리들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가 의지할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다.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믿는 믿음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믿는 믿음이다. 우리의 행위는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❻왜 믿음으로만인가?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10:4) 십자가 위에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심으로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죄의 값을 예수님을 갚으셨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의’를 이루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한다(9:33).
잘못된 지식과 열심은 분명히 위험하다. 열심하는 사람의 뜻과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다시 말씀 앞으로 나아간다. 말씀에 관한 바른 연구와 이해만이 건강한 열심,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낼 것이다. 사람의 열심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열심이 나의 열심을 주장하고,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시길 간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