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을 불러 각각 그 재능대로 금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각자의 재능을 잘 알고 필요에 따라, 각자에게 가장 적절하게 결정하여 준 것이다. 그런데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두 가지 반응이었다.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각각 다섯과 둘을 남겼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달란트를 감추어 두었다.’
그런데 오랜 후에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한다. 결산할 때 둘과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았다. 적은 일에 충성했으니 더 많은 것을 맡길 것을 말씀하시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복을 주신다. 결산의 날은 반드시 다가온다. 그런데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오랜 후’이다. 달란트를 받은 종들에게 장사를 할 수 있는, 달란트를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신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결산의 날에 책망받는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평가하신다. 무엇 때문에 이런 평가를 받는가? 주인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결산의 현장에서 종은 주인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셨나이다”(24절 하-25절) 주인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인에 대한 오해였다. 그래서 주인은 이 종을 책망했다. 이어서 만약 그렇게 이해했다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했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이 비유에서 생각할 부분이 있다.
❶종들은 모두 달란트를 받았다. ❷달란트를 활용한 종과 활용하지 않고 땅에 묻어 둔 종으로 구분된다. 다르게 표현하면 주인이 무엇을 위해 달란트를 주었는지를 아는 사람과 오해한 사람이다. ❸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최소한의 의무마저도 행하지 않은 사람이다. ❹달란트로 장사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❺결산할 날이 반드시 있다. 우리가 어떻게 달란트를 활용했는지 평가받는 날이다. ❻착하고 충성된 종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고, 악한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겨 슬피 울며 이를 간다.
주님의 비유는 천국의 비유이다. 천국은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다.” 열 처녀 비유와 연결하여 생각하면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 등에 기름을 준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한 걸음 더 들어가 설명하시는 것이다. 모든 처녀가 등과 기름을 가지고 시작한다. 주인은 모든 종에게 달란트를 주었다. 문제는 달란트를 얼마를 받았느냐가 아니다. 그 받은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했느냐이다. 바리새인들처럼 형식에 치우쳐 본질을 놓쳐버리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바른 믿음이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이다. 바른 믿음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필요를 따라 믿는 것도 아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 한 분만을 신뢰하는 것이다. 신뢰한다는 것은 “내 삶, 내 인격, 내 전 존재”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믿음에 따르는 변화, 분명한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어느 때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는 반드시 결산의 날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날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내게 주신 믿음의 분량, 달란트를 따라 최선의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알아가기 위해 말씀 앞에 서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며 그것을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