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원히 잊지 마소서”(시 74:19)

앞이 캄캄해질 때가 있다. 꿈, 소망이 사라질 때이다. 행하는 일마다 실패할 때이다. 가진 것도 없는데 건강도 잃고, 삶의 터전도 잃어버릴 때이다. 시인은 절망 중 하나님을 바라본다. 의지할 그 무엇도 없고, 자기에게는 소망이 없기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한다.

앞이 캄캄한 일을 만날 때 우리는 불평을 하곤 한다. 절망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주변을 원망하기 쉽다. 그러나 시인은 이웃의 탓을 하지 않는다.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한다. 자신의 죄 때문에 곤경에 처함을 안다.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죄를 해결해야 함을 알고 있다. 죄를 스스로 어떻게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만 바라본다.

하나님만이 능력이시며, 모든 죄를, 그리고 현재 처한 절망을 해결해 주실 유일한 분임을 확신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영원히 잊지 마소서. 잠깐 기억되고 잊혀지는 존재가 아니라 영원히 잊지 않는 존재가 되길 기도한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어떤 어려운 상황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해결하실 것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길 기도하는 이유이다.

무엇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하는가? 가난한 자의 목숨이다.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고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힘없는 사람이다. 누군가 보호해 주지 않으면 생명조차 지킬 수 없는 사람이다. 가진 자가 힘을 사용하여 횡포를 부리면 속수무책 무너져 버리는 사람이다. 어느 시대나 존재하는 사회의 약자이다. 그런 연약한 사람의 생명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세상은 힘 있는 사람이 득세한다. 힘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걸어가는 길이 진리처럼 보인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절망할 환경이다. 가진 자들은 공공연하게 없는 자들을 멸시하고 조롱한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작품이며, 하나님이 눈여겨보시는 존재임을 생각하지 않는다.

가난한 자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그리고 가난한 자의 아버지이시다.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의 든든한 후원자이시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책임지시고 지켜 주시리라 약속하셨다. 그래서 가난한 자, 궁핍한 자가 주를 찬송할 날이 있다. 가난한 자가 웃는 세상이 행복한 세상이다.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오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서로를 다르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길 소망한다. 왜 다르게 창조하셨는지, 왜 한 사회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게 하시고,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있게 하셨는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강한 자가 약한 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움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우리 사회에 가득하길 원하신다.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