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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5: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빼앗긴다. 블레셋은 신이 나서 하나님의 궤를 자기 신을 모시는 다곤 신전에 둔다. 그런데 문제가 시작된다. 까닭없이 다곤 신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려져 있고, 그 이튿날에는 신전 문지방에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 진열되듯 줄맞춰 있었다. 누군가 이렇게 행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여호와의 손이 블레셋에 계속하여 나타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블레셋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궤를 옮기면 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가드로, 또 에그론으로 옮긴다. 문제의 원인을 잘못 분석하고 있다. 블레셋이 완전히 항복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때 끝날 일이다. 단순히 장소를 옮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손이 블레셋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하나님이 참 신임을 보여주시고자 일하시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의 손길이 엄중히 나타난다. 독한 종기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한다. 블레셋 사람도 이것은 다곤 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치는 것으로 생각하고 가드로 옮긴다. 가드에서 더 심하고 큰 환난이 나타나 독한 종기로 하나님의 손길을 보여주신다. 다시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옮긴다. 그곳에서도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한다. 그때의 상황이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12절)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낸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은 은혜의 손길로도 나타나지만, 심판의 손길로도 나타난다. 은혜의 손길을 누구나 사모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어려움을 해결하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어떤 사람이든지 심판은 싫어한다. 하나님의 손길이 심판으로 나타난다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벌을 주시기보다는 은혜 베푸시기를 더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블레셋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손이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그 손길 하나님의 손길인지 깨닫지 못하고, 우연한 일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엄중하다는 표현처럼 무겁게, 누가 보아도 자연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님을 하나님은 보여주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손길을 보면서 하나님이 왜 이렇게 행동하시는지 마음에 새겨야 한다. 하나님은 까닭없이 그 손길을 드러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오늘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심판의 손길이 아니라 은혜의 손길을 경험하기 기도한다.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깨우치시고 어루만지시는 손길로 인해 하나님을 더욱 사모하고 사랑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손을 본받아 이웃에게 내어주는 손이 되길 기도한다. 힘들어 주저앉아 있는 사람을 손잡아 일으켜 주고, 곁길로 걸어가는 자의 손을 잡아 바른 길로 이끌어 주며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손길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