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1:10)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스가랴가 본 여덟 가지 환상에 관한 기록이 시작된다. 스가랴는 제일 먼저 포로 생활로 암울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을 살펴 주시길 구한다. 약속한 70년이 채워졌으니 약속의 말씀대로 이루어 달라는 기도이다. 제일 먼저 보는 환상은 말 탄 자들의 환상이다.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궁금하여 묻는다.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 뒤에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어서 이들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때 붉은 말을 타고 선 자가 대답한다.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다” 고통과 아픔 가운데 주저앉아 회복의 때를 기다리는 삶의 현장을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어 살피신다.
하나님은 정의를 바로잡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온 세상을 살피신다. 하나님의 살피심은 어느 한 곳에 한정되지 않는다. 온 땅을 두루 다니며 살핀다. 못보는 부분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을 살피시는 분이 아니시다. 사람들의 계획과 마음속에 품은 생각까지도 살피신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꼼꼼히 살피시고 정확한 기준에 따라 판단하신다. 그 하나님이 사람을 보내어 세밀하게 살피게 하시는 것은 구원과 심판을 위함이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말씀과 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따르는 자들에게는 회복과 구원이 펼쳐진다는 예고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암울하고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 법의 기준을 교묘하게 피하며 부자가 되고, 잘살고 있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그들의 잘못이 드러난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날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악한 자들의 형통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악의 형통을 부러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신기루를 따라가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는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하나님은 역사를 내버려두시고 수수방관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믿기에 낙심하지 않고 믿음의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하늘의 아버지에게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기도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통치가 시행되고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는 나라를 사모하라 하신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의 통치를 바로잡는 방법은 질투와 긍휼이다. 예루살렘,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크게 질투하셔서, 열심을 내어서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을 잔인하게 괴롭히고 압제한 나라들을 향해 심히 진노하신다. 대신 고난 가운데 살아가는 이스라엘, 하나님 백성은 긍휼히 여기신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회복이 시작된 것이다.
캄캄한 밤과 같은 오늘의 현실마저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운 것처럼 악이 가득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가까이에 있다. 악한 자들에게 편승하여 보호받고 안주하려는 악한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세상의 흐름과 세상방식으로 사는 사람에게 약속된 거짓 평화를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평안이다.
시대를 탓하고 나의 환경을 탓하기 앞서 나의 신앙을 돌아본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믿음의 분량을 따라 오늘을 살아갈 지혜를 구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영적인 안목이 열리고 우리를 살피기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을 보는 눈이 있기를 기도한다. 그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참된 평안으로 오늘을 지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