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7: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때 심히 지치신 상황이었다. 십자가의 길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은 만나 그에게 강제로 십자가를 짊어지게 한다.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은 행하셨을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실 힘이 없으셨기 때문이 아니다. 주님이 짊어지신 십자가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대속의 십자가이며, 자기 몸까지 내어 주심으로 사랑하신 증표이다. 이 십자가는 그 누구도 대신 짊어질 수 없는 십자가이다. 주님은 얼마든지 끝까지 십자가를 지실 수 있는 넉넉한 능력을 소유하신 분이시다.
그렇다면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시몬 때문에, 시몬을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신 것이다. 시몬은 구레네 사람이었다.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한 도시, 아마도 트리폴리일 것이라 말을 한다. 확실한 것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올라왔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그는 경건한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아직 아니다. 그런 그에게 십자가를 지는 것은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일이었을 것이다. 경건한 유대인이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올라가는데 수치와 죄악의 상징인 어떤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세상적으로 표현한다면 정말 재수가 없는 날이다.
구레네 시몬은 이 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 십자가 형틀에 매달린 주님을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였다. (막 15:21) 로마서 마지막 부분에 바울이 문안하라는 단락이 나온다. 그 문안 중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당부한다. (롬 16:13) 그런데 루포를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사람”으로 소개한다. 어떻게 경건한 유대인의 가정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될 수 있었을까?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억지로 얼떨결에 진 십자가였다. 억지로 따라 걸어간 십자가의 길이었지만 이 일이 하나님의 부르심이었고, 은혜의 손길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그와 그의 온 가족은 예수님을 따르는 경건한 그리스도인 가정이 되었다.
억지로 따라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이며, 짊어진 십자가라 할지라도 이렇게 놀라운 변화와 역사를 이루어낸다면 자원함과 기쁨의 헌신을 통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경험할 수 있을까?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면 하나님은 구레네 사람 시몬을 통해 그의 가정을 구원하고, 그가 생활하는 북아프리카를 변화시키기 위해 우연인듯하지만 필연으로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놀랍고 기대되는 이유이다.
하나님의 일은 생각만 해도 기대가 된다. 우리가 기꺼이 주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와 함께하신다.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행하시고, 하나님이 일하신다. 사람들의 눈에는 불행하고, 재수 없어 보여도 하나님은 그것이 복이 되게 하신다.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고, 풍성한 삶을 살도록 사용하신다. 우리도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을 향해 묵묵히 걸어갈 때 때로 이해되지 않는 일을 만나도 믿음 안에서 걸어가길 소망한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끝까지 따라가길 기도한다. 낙심하거나 피곤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오늘도 하늘의 은혜를 덧입혀 주시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