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48: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창 48:6)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야곱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은 두 아들과 함께 아버지를 문안한다.(1절) 요셉의 방문 이야기를 들은 야곱은 힘든 몸을 일으켜 세워 침상에 앉는다. 그리고 과거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다시 회상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지 증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 아들로 입양한다. 법적 권리를 요셉의 아들들이 요셉의 형제들과 같이할 수 있도록 입양 선언한 것이다. 아들로 입양하는 행위는 자신의 상속자로 삼는 것이다. 아들들을 잘 길러내기 위해 아들로 입양하는 것은 아니다. 또 아들이 없어서 입양하는 것도 아니다. 야곱의 입양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
요셉의 초청으로 고센 땅으로 이주할 수 있었고, 야곱과 그 가족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힘든 시기에 오히려 생업을 얻고,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었다(창47:27). 하나님의 은혜이다. 에브라임과 므낫세 이후의 소생은 요셉의 것이 될 것을 선언한다(6절). 입양하면서 한계를 분명히 한다. 그리고 권리로서 그 두 아들이 유산을 그들의 형들의 이름으로 함께 받을 것을 말한다. 요셉의 두 아들을 요셉과 동일한 위치에 올려 상속자가 되게 한다. 합법적인 상속자가 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야곱은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 선언한다. 르우벤과 시므온은 야곱에게 잊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겨준 아들들이다. 르우벤은 서모 빌하와 통간을 했다. 시므온은 세겜에서 언약 백성의 표징인 할례를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는 일에 사용한다. 할례를 받고 가장 아파할 때 세겜 남자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한다. 이들은 분명 야곱에게 잊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겨주었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 아들로 입양하면서 이 두 아들의 이름을 언급한 이유가 무엇일까? 왜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일까? 르우벤과 시므온은 이런 큰 실수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상속자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는다. 그렇다면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이제부터 합법적 아들들로서 어떤 조건에도 상속자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고백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 자녀가 되었으면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세상살이에서 만나는 유혹으로 우리가 자주 넘어진다. 넘어질 때마다 고민이 된다. 정말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의 복을 누릴 수 있을까? 그런데 오늘 말씀은 이런 우리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 준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입양되며 우리들의 어떤 잘못에도 불구하고 상속자의 지위를 잃지 않는다는 교훈이다. 이미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모든 죄값을 치르셨다. 우리들의 원죄, 그리고 과거의 죄만이 아니라 미래의 죄까지 다 포함하여 치르셨다. 일상에서 지은 죄는 하나님께 나아가 자백하면 용서하신다. 자녀에게 주신 특권이다.
문제는 자녀로 입양되는 것이다. 분명한 신앙고백, 예수님의 개인의 구원자와 삶의 주인으로 확실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도 연약한 우리를 격려하고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길 소망한다. 매일 연약한 부분을 말씀을 굳게 하고, 주를 더욱 닮아가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