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33:5)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변함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신다. 우리의 환경과 형편에 따라 변하는 분이 아니다. 한 번 사랑하기로 한 것은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신다. 한결같은 사랑이다. 어떤 때는 많이 사랑하고, 어떤 때는 조금 사랑하는 분이 아니다. 신실하시며 일정하신 분이시다. 믿고 따를만하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사랑의 손길이다.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때로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오히려 사랑이 아니라 채찍과 징계가 다가올 때가 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바른길을 걷도록 사랑의 채찍을 사용하신다. 사랑을 통해 변화시키는 것이다. 채찍과 징계는 정화하는 과정이다. 하나님을 닮도록 다듬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가리는 장애물이 있다. 우리들의 악행이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이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분리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사 59:2) 우리가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는 것을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죄는 결국 우리를 멸망으로 이끌어 간다. 죄의 삯은 죽음이다. 사망이다. 생명이신 하나님과 정반대이다. 악행은 하나님의 얼굴을 가린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다. 죄가 우리를 유혹할 때 우리가 제일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이다. 하나님 앞에 내가 서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전의식’은 건강한 성도의 마땅한 자세이다. 유혹이 많은 세상 속에서 구별되게 사는 길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시고, 나와 동행하시며, 내가 성도답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원하심을 기억하는 것이다. 무엇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일까 물으며 선택의 순간마다 하늘의 지혜를 구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는 우리도 싫어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관계를 깨뜨리며 건강까지 해친다. 이렇게 죄에 종노릇 하며 죽어가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죄의 종노릇에서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 주님이 이 땅에 오셨다. 우리들의 이런 죄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셨다. 죄 없으신 분이 우릴 대신하여 죄값을 치르셨다. 대속의 은혜이다.
십자가 구속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마다 참된 자유를 주셨다. 죄에 얽매이거나 죽음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불안하지 않게 하셨다. 죽지 않기 위해 바둥거리는 삶이 아니다.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살게 하셨다. 죽음 너머에 있는 영원한 생명,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하셨다. 우리에게 참된 행복, 즉 영생의 복락을 허락하셨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행복이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나를 살피며 거룩함을 추구한다. 회개하며 용서를 구한다. 하나님의 칭의를 힘입어 성화의 삶을 소망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따라 하나님 닮아 살기를 소망한다. 불평과 원망의 입술이 찬송과 감사로 변화되고, 낙심하고 슬퍼하는 삶이 아니라 꿈을 꾸며 소망 가운데 기뻐하며 살기를 기도한다. 목자 되시는 하나님 품 안에서 하루를 즐기며 살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