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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8:11)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아야 하고, 선을 행한 사람은 상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 세상은 부조리해서 악을 행한 사람이 상을 받고, 선을 행한 사람이 벌을 받기도 한다. 세상의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행해도 여전히 자리를 보존하면서 세상을 다스려간다. 오히려 백성들 편에 서서 백성을 위한 왕은 쉽게 버려진다.

부조리한 사회를 볼 때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기를 갈망한다. 속히 하나님이 나타나시어 선악을 분별해 주시길 원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판단이 유보된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악하게 살아도 괜찮다 생각한다. 악을 행하는 일에 담대해진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당당하게 산다는 것이다.

악을 행하면 우리 양심이 말을 한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도 당당하게 악을 행한다면 양심이 무뎌진 것이다. 양심의 기능이 둔감해지고 마비된 것이다. 인과응보의 원리를 따라 권선징악이 시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의 현실은 그렇게 시행되지 않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다.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재물이 많고 권력을 가진 사람은 악을 행해도 큰 벌을 받지 않고 쉽게 풀려난다. 죄인은 악을 100번이나 행하고도 장수한다. 100번이나 행했다는 것은 횟수를 말함이 아니다. 그렇게 자주 악을 행하고도 장수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그렇게 악한 사람은 호된 심판을 받아야 하고, 장수하면 안 된다. 오히려 요절해야 마땅하다.

전도자는 자신이 아는 것과 눈 앞에서 펼쳐지는 현실이 서로 달라서 혼돈하고 있다. 그런데 악인이 형통하고 잘 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잠시 잘 될 뿐이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기 위한 눈속임이다. 반드시 진리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악인이 잘 되지 못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다.

부조리한 사회를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질 날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도 부조한 사건이었다. 죄없는 분에게 죄를 씌워서 처형을 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를 위한 구속사역을 완성하셨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마다 영생복락을 누리게 해 주셨다.

당장 눈앞에 부조리한 일이 펼쳐지고,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포장된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선하시며, 살아 계시다. 하나님이 악인과 선인을 구분하시고 각자에게 마땅한 보상과 처벌을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사랑을 드러내고, 복음을 드러내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