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기도는 영적인 호흡과 같다. 호흡이 멈추면 죽게 되는 것처럼 영적 호흡인 기도가 멈추면 우리 영도 숨쉴 수 없다. 우리 삶의 본이 되신 예수님은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이 힘들어 죽을 형편일 때 겟세마네에 오르셨다. 십자가의 무거운 짐을 앞에 두고 간절하게 기도하셨다. 겟세마네에게 기름을 짜듯 간절히 기도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질 정도로 간절히 기름을 짜듯 기도하셨다.
간절한 기도였기에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한 번 기도하시고 난 후에는 기도를 바꾸신다. 내 뜻대로 되면 좋겠지만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신다. 아버지의 원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 각자에게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자기 뜻이 분명하셨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어떻게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을까? 목숨이 걸린 문제 앞에서 이렇게 초연할 수 있을까? 내게도 이런 상황에 다가온다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예수님처럼 한 번 기도한 후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구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마음에 있는 나의 원하는 것이 쉽게 포기되지 않기 때문이다.
절박한 순간 기도하는 예수님의 기도에 아버지는 침묵하신다. 아무런 답도 주지 않으신다. 평소에는 놀라운 기사와 이적으로 행하신 분이 침묵하신다. 침묵처럼 답답한 순간이 없다. 마음 졸이고 급한 생각이 들 때 침묵은 더 힘들게 한다.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힘들어서 위로의 말 한마디가 필요한 대 침묵하신다. 아들의 기도이다. 아들의 기도에 아버지가 침묵하신다.
침묵 중에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해한다. 침묵은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따르라는 응답임을 이해한다. 역시 이것이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같은 내용으로 세 번 기도하셨다. 기도가 반복되면서 침묵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 생각과 계획은 내려놓으신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떼를 쓸 수도 있다.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다른 방법을 찾아달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다. 도저히 십자가의 길을 동의할 수 없다고 뒤돌아 설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셨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이다. 대화를 통해 아버지의 뜻을 확인하고, 내 뜻보다는 아버지 뜻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기도이다.
겟세마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 방식으로 이해하면 응답받지 못한 기도이다. 자신이 원하는 뜻이 있었지만, 그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피하고 싶은 길이 십자가의 길이었다.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라고 예수님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침묵도 응답이다. 예수님은 침묵 속에서 아버지의 뜻을 발견한다. 기도 응답을 받았다. 내 뜻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다.
기도 응답은 꼭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내 뜻과 정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기도의 성패는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느냐가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오해하고 내 뜻대로 행하는 것이 실패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길이다. 내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내 기도 생활을 점검한다. 예수님의 기도를 따라 기도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