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6: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악한 영이 그를 번뇌하게 한다. ‘번뇌하게 한다’는 단어는 ‘공포에 몰아넣다, 괴롭히다’는 의미가 있다. 한 나라의 왕이 공포에 떨고, 괴롭힘을 당한다. 그리고 그 일을 신하들이 보고 안다. 악한 영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신하들도 보아서 알게 되었다.
신하들이 왕을 위하여 치료 방법을 제안한다.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음악치료를 하자는 것이다. 사울이 동의하자 한 소년이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사람을 추천한다. 하나님이 기름을 붓게 하신 다윗이다. 무명의 한 소년이 추천하였다. 실제로 다윗이 수금을 연주할 때 사울은 악령이 떠나고 치유하시는 은혜를 입었다.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삼상 16:23)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고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삼상 16:13)
수금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연주자가 중요하다. 연주자가 성령에 사로잡히니 치유가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다윗이 영감 있는 연주를 한 것이다. 영감 있는 연주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연주라는 뜻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한 공간에 같이 있고,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해 악한 영이 떠나간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연주자를 통해 악한 영을 물리쳐 주신 것이다.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반드시 누군가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다. 악령이든 성령이든 영의 지배를 받는다.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든지 아니면 성령의 생각을 따라 살게 되어 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우리가 누구에게 지배받고 사는지 주변 사람들이 보면 알 수 있게 된다. 누군가의 지배를 받는 것은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사울이 악령에 사로잡힌 것을 신하들이 안 것처럼 성령에 사로잡힌 것도 알게 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사는지 살펴본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예수의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입으로만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지 살핀다.
일상생활 중에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내가 무엇을 힘입어 사는지 분명하게 알 것이다. 악한 영이 아니라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가득 채워지는 삶을 소망한다. 나를 통해 표현되는 언어와 행동이 하나님을 나타내고,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답게 살기를 소망한다. 생활 중에 만나는 사람에게 성령의 일하심만 선포되고 나타나 만나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게 되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