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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은 달갑지 않은 존재이다.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이야기해도, 시험이 가져다주는 유익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어도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말씀은 우리에게 시험에 관한 생각을 바꾸게 한다.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한다. 기쁘지 않기 때문에 기쁘게 ‘생각하라’ 하는 것이다. 시험을 기쁘게 생각하라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험을 ‘당하거든’이라는 표현이 우리에게 오해하게 한다. 만날 수도 있고, 안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시험이다. 그런데 그런 뜻이 아니다. ‘시험을 만난다면’은 영어의 ‘if’ 가정문이 아니다. ‘시험을 만날 때마다’(whenever)라는 뜻이다. ‘누구나 시험은 만나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시험을 만날 때마다 기쁘게 여기라 한다.

우리가 시험에 빠질 때 “하나님은 왜 나에게만 이런 시험을 주실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나만 미워하셔서 나에게만 시험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모든 성도를 변함없이 사랑하신다. 사랑하시기에 시험을 만나게 하신다. 온실의 화초가 아니라 세상의 모진 풍파, 사탄의 간교한 공격, 세상의 문화가 우리를 흔들어도 넘어지지 않는 견고한 믿음의 성도,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다듬어 가시는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우리에게 시험이 가져다주는 유익이 있다고 말한다. 시험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서 모든 것을 구비하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한다. 온전한 삶,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하려고 시험을 겪게 하신다. 우리가 시험을 바라보는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였다.

예레미야는 애가서 3장 27절에서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겪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3) 그렇다. 하나님의 본래 마음을 알고 나면 우리가 만나는 시험에 관한 생각이 달라진다. 새로운 관점이다.

시험을 만날 때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한다. 모양내면서 대충 기쁜 척하는 것이 아니다. ‘온전히’라는 말은 ‘진심으로, 온 마음으로, 전적으로’라는 뜻이다. 시험이 다가올 때 환영하고 기뻐하라 하신다. 시험이 내게 가져오는 실제적 유익을 경험해보면 시험에 관한 생각이 조금씩 변화될 것이다.

하루하루 삶이 시험의 연속이다. 다양한 믿음의 시련이 끊임없이 다가온다. 그 시험을 통하여 오늘 내 안에 ‘인내’가 배워지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길 소망한다. 무엇보다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닮은 성숙한 성도, 필요한 모든 것을 구비하게 하시고, 충만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