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5: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제자들이 힘써 복음을 전파할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 병든 사람들이 회복되고, 더러운 귀신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이 나음을 입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베드로가 지나가는 거리에 병든 사람의 침대와 요를 펴고 그림자라도 지나가며 고침 받기를 원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수도 남녀의 큰 무리였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들을 치유한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거의 예루살렘에 전염병처럼 예수의 복음이 퍼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주변으로 퍼져가는 예수의 복음을 보면서 당시 대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은 불편함을 드러낸다. 자신들에게 집중되어야 할 백성의 종교적 관심이 온통 예수님에게 집중되는 것을 보면서 불편한 것이다.
그들 마음에 시기심이 생겼다. 종교권력자들의 마음에 사도들의 복음 전파 사역이 자신들의 권력에 심각한 손상이 생긴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일어났다. 그들이 일어선 목적은 한 가지이다. 예수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들을 꺾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인기 몰이를 하는 그들을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이들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다(18절). 사설 감옥이 아니라 공적 감옥이다. 가택 연금이 아니다. 자기 판단으로 드나들 수 있는 감옥이 아니다. 병사들이 지키고, 철저하게 관리되는 공적인 감옥이다. 옥문을 잠그고 지키는 사람들이 서 있기에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제한되는 곳이다.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들을 낙심시키려는 것이다.
시기심은 이렇게 이웃이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 인기가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시기심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고 한다. 제대로 볼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정말 원하는 종교의 모습은 무엇인지 깨닫고 그들이 스스로 변하면 다시 종교의 기능을 회복하고 사람들의 마음도 돌아올 수 있다.
백성들이 원하는 종교의 모습이 어떤 것일까? 자기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종교가 아니다.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그 가르침을 삶으로 드러내는 종교이다. 믿는 것과 행동이 일치하는 종교이다. 말로는 사랑을 외치지만 행동으로는 이기적인 사람은 백성들이 먼저 알아본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은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 종교 지도자들을 깨우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길은 우리의 삶에 동떨어져 있지 않다.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그 증거를 보여주신다. 하나님의 손길을 매일 매 순간 느끼는 사람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다. 주변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아무런 의미 없는 일로 지나치지 않고 되돌아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고등인지, 하나님의 안내 표지판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수 있다.
말씀이 이끄는 대로 순종하며 살기 위해 우리 마음을 살펴야 한다. 시기심으로 행하면 가장 먼저 자신이 알 수 있다. 내 필요를 채우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다른 사람을 시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스스로 망하는 길이다. 이웃이 잘될 때,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 나도 박수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하루도 내 안의 시기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믿음의 사람답게 살기를 기도한다.

